목차
1. 들어가며
2. DCCPA 법안이란?
3. 쟁점
4. SBF 입장
5. 창펑자오 입장
6. 규제 핵심 원칙
6-1. 국제적으로 통일된 가상자산 택소노미
6-2. TradFi와 DeFi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이해
6-3. 공시의 의무화
7. 마치며
1. 들어가며
FTX 뱅크런 사태로 대규모 가상자산 가격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바이낸스 CEO 창펑자오가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바이낸스가 보유중인 $500M 규모의 FTT 토큰(FTX 거래소 토큰)을 매도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쟁글 리서치 참고). 창펑자오는 바이낸스의 FTT 매도가 리스크 관리 차원의 결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등 뒤에서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사람들을 지지할 수 없다"라는 의미심장한 트윗을 남긴다. FTX CEO Sam Bankman-Fried(이하 SBF)를 겨낭한 것으로 보이는데, SBF가 대체 어떤 로비를 했으며 규제의 방향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일명 “DeFi Killer” 법안으로 알려진 디지털 상품 소비자 보호법(이하 DCCPA)을 보아야 한다.
DCCPA는 지난 8월 미 상원에 발의된 법안으로, 상품거래법(Commodities Exchange Act)을 개정해 미국 상품선물 거래위원회(이하 CFTC)의 감독 권한을 일부 가상자산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한 법안이다. DeFi를 구속하고 CeFi에 우호적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SBF가 법안 통과를 위해 적극 로비를 펼치고 공개적으로 옹호에까지 나서며 논란은 가중되었다.
세계 최대 CeFi 기업을 이끌고 있는 창펑자오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SBF의 로비 활동에 대해 불만을 가졌는지 우리는 현 시점에서 추론만 할 뿐이다. 하지만 FTX 사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가상자산 규제 도입에 더욱 박차가 가해질 것만은 분명하다. 규제의 부재를 틈타 수많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방만한 경영을 하며 투자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그만큼 규제는 완전해야 한다. 커뮤니티 역시 무개입의 원칙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건설적인 절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에 필자는 가상자산 규제 도입에 있어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핵심 원칙 3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DCCPA 법안이란?
DCCPA는 올 8월 3일 Debbie Stabenow & John Boozman가 발의한 법안으로, 3월 Cynthia Lummis & Kirsten Gillibrand가 발의한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안인 책임금융혁신법(RFIA; 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에 비해 규제도입의 범위가 협소하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자산이 거래되는 현물시장 감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원이 DCCPA를 통해 상품거래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CFTC가 관할권을 가지는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사업자를 명확히 정의내림으로써 법 해석의 논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감독 권한은 강화화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CFTC는 올 9월, 가상자산에 대한 레버리지 및 마진 상품 거래 서비스를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로 DeFi 어플리케이션인 bZeroX에 벌금을 부과하고, bZx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기능을 가지는 Ooki DAO를 고소한 바 있다. CFTC가 지정한 거래 플랫폼이 아닌 분산형 환경에서 마진 상품 거래를 주도해 상품거래법 및 CFTC 규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는데, 이는 곧 CFTC가 DCCPA 없이도 이미 가상자산 플랫폼들을 처벌하고 감시할 법적 근거가 있다는 뜻이다. DCCPA가 통과된다면 CFTC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DCCPA는 현재 상원의 농업, 영양, 임업(Senate Agriculture, Nutrition, and Forestry) 위원회와 은행, 주택 및 도시 문제(Senate 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 위원회의 청문을 토대로 법안 개정(Mark-up)이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19일 Delphi Labs의 법률 고문인 가브리엔 샤피로(Gabriel Shapiro)에 의해 DCCPA의 최신 개정안이 공개되었는데,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y)”이라는 자산군을 신설. 상품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품(Commodity),” 즉 CFTC의 관할 영역이 디지털 상품까지 포괄하도록 개정
- “디지털 상품”을 “중개자 없이 P2P 교환 및 소유증명이 가능한 디지털 형태의 사유 재산”으로 정의
-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
- 디지털 상품 브로커, 딜러, 수탁인, 거래시설을 “디지털 상품 플랫폼(Digital Commodity Platform)”으로 묶어 CFTC에의 등록 및 인허가 절차 의무화
-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를 “디지털 상품의 거래가 실행되는 거래 시설”로 정의
- 단, 밸리데이터, 코드 개발자 및 퍼블리셔는 “디지털 상품 플랫폼” 분류에서 제외
- “디지털 상품 플랫폼”은 CFTC가 요구할 시 디지털 상품의 거래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필요한 가격 및 거래량 정보, 고객 통계 등의 정보 제공 의무화
- CFTC에 대해 “디지털 상품”의 마진 및 레버리지 거래에 대한 준칙을 제정할 권한 부여
- CFTC에 대해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 내 가상자산 상장/상장폐지 인허가 권한을 부여
- CFTC는 고정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디지털 상품” 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발행주체, 담보자산, 상환방식에 대한 평가를 진행
- CFTC에 대해 “디지털 상품 플랫폼”에 대한 수수료 권한 부여
커뮤니티는 압도적으로 DCCPA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법안 내용 중 논란이 될만한 핵심 쟁점들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쟁점
첫째, “디지털 상품”의 정의가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나아가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SEC와 CFTC간 합의된 바 없다.
SEC는 Howey Test를 통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단 한번도 그에 따라 분류된 증권형 토큰 리스트를 공개한 적이 없으며 그 실마리가 될 SEC v. Ripple Labs 소송은 거의 2년 가까이 진행중이다. Shapeshift의 CEO Erik Voorhees는 이에 대해 “SEC는 플로리다 오렌지 숲에 대한 80년 된 규칙에 의존하여 다양하고 진화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구성된 전 세계 수조 달러 산업을 규제하려 한다”고 조소한다. 기술적으로 복잡한 자산군에 전통 금융정책 프레임워크를 무리해서 대입하려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이다.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이 생성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SEC, CFTC, 법원 그 누구도 명확한 가상자산 분류체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 도입에 앞서 국제적으로 통일된 가상자산 택소노미(분류체계) 확립이 시급하다. 가상자산 분류법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칙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기관이 어느 가상자산에 대해 감독권한을 가지는지 조차 판단하기 힘들다.
둘째,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의 범주에 DEX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이란 “디지털 상품의 거래가 실행되는 거래 시설”로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한 자산 교환 여부, 중개 수탁인의 존재 여부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 CEX와 DEX 간의 구분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DEX는 CFTC 등록 요건부터 시작해 수많은 규정 준수 의무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CFTC는 은행비밀보호법(BSA; Bank Secrecy Act)에 의거해 선물거래 중개인(FCM; Futures Commission Merchants)에 고객의 실제 신원을 식별하기 위한 고객 식별 프로그램(CIP; Customer Identification Programs)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는 곧 CFTC에 등록된 DEX의 유저들은 전부 KYC를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개인의 금융서비스 접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되며, 이는 다양한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DeFi의 핵심 철학에 위배된다.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DeFi 생태계의 발전을 저해한다. CFTC의 라이센스 취득 및 운영 과정에서 규정 준수에 적잖은 비용이 발생할 텐데(감사 비용, 내부 컴플라이언스 조직 운영 비용 등), 이는 대규모 백킹이 없는 일반적인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프로젝트를 런칭하기 이전 CFTC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개월간의 딜레이는 제품의 적시성과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킨다.
셋째, DCCPA는 CFTC가 인허가 및 감독 행위를 수행할 수 있도록 플랫폼에 자의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한다. 문제는 프로젝트 입장에서 이미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수수료 부담까지 떠안을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이 수수료가 고스란히 엔드 유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개인을 잘라냄으로써 금융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DeFi의 장점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의 일부 관리 조항들에 드러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정책 당국의 낮은 이해도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상품 거래시설”은 CFTC가 요구할 경우 "가격, 거래량 및 기타 거래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적시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데, 개방형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DEX의 경우 모든 거래내역이 렛저에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공개되고 있다. 또한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객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는 수탁자를 통해 중앙화된 방식으로 자산을 교환하는 CEX에 해당되는 사안이지 개인이 지갑을 직접 관리하는 DEX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다. 이렇듯 블록체인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기반으로 전통 금융 인프라를 규제하듯 작성된 법안이기에 반발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SBF는 DCCPA를 위해 로비 활동과 공개적인 지지를 이어 왔다. 그는 나아가 ftxpolicy.com을 통해 “규제의 명확성을 제고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견이 담긴 디지털 자산 업계 표준을 제시했는데 DCCPA와 비교해 보아도 DeFi에 대해 상당히 구속적인 항목들이 많아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4. SBF 입장
DeFi 탐사보도 단체 rekt는 SBF의 건의안에 대해 "SBF와 알라메다가 DeFi의 서부 개척 시대에 규제의 부재를 틈타 수많은 프로토콜로부터 단물을 빨아먹은 뒤 혁신을 방해하려 한다"고 강하게 질타하고 Erik Voorhees는 SBF의 제안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게재하는 등 SBF는 상당한 반발에 직면했다. SBF의 제안 중 특히 논란이 되었던 블랙리스트(Sanctions, Allowlists and Blocklists)와 DeFi 규제에 관한 세부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SBF는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 Control)이 온체인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며, 등재되어 있는 주소들 뿐만 아니라 해당 주소들과 트랜잭션이 발생한 모든 주소들 역시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OFAC은 미 재무부 산하 기관으로 주로 테러범과 마약 밀매업자와 같은 국가 및 개인 집단에 대한 경제 제재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시행하는데, 미국인의 국제 금융 거래와 관련해 절대적인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쿠바, 이란, 시리아와 같이 OFAC에 의해 포괄적 제재 대상국(Comprehensively Sanctioned Countries)으로 지정된 국가의 경우 미국인이 해당 국가의 일반 시민과 금융 거래를 하는 것조차 일절 금지되어 있는데, OFAC에게 온체인 블랙리스트의 관리 및 시행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DeFi가 지향하는 개인 금융 활동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자 금융 소외계층을 배척하는 행위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OFAC은 이미 올 8월 북한의 해커 집단인 라자루스의 자금세탁처에 활용되었다는 이유로 가상자산 믹싱 서비스 토네이도 캐시를 특별지정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일부 악의적인 사용자의 지갑 주소와 트랜잭션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프로토콜을 겨냥해 사용 금지시키고, 이러한 제재 활동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OFAC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OFAC의 블랙리스트가 현실화 되더라도 기술적으로 실질적인 제재를 강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여러 DeFi 프로토콜들을 CFTC의 관할권 하에 귀속시키려는 DCCPA 법안과 조합이 되었을 때 DeFi 생태계에 상당히 위협적인 제안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SBF는 DeFi 어플리케이션 접속을 가능케 하는 중앙화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제공자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규제당국의 인허가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DeFi 어플리케이션 코드를 블록체인에 업로드하는 행위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밸리데이터로 참여하는 행위 역시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하지만 리테일 투자자들을 DeFi 어플리케이션에 연결시켜 주는 프론트-엔드 GUI 및 DeFi 어플리케이션을 마케팅하는 자의 경우 등록 및 라이센스 취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프론트-엔드 GUI는 우리가 유니스왑(app.uniswap.org), 커브 파이낸스(curve.fi)와 같은 DeFi 어플리케이션 접속 창구를 말하는데, 사실상 모든 DeFi 어플리케이션을 인허가 없이 운영할 수 없도록 건의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화된다면 GUI의 도움 없이 직접 블록체인 상의 코드를 쿼리할 수 있는(즉, 프로그래밍 지식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DeFi 어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금융당국에 등록 및 인허가를 마친 인터페이스들을 통해 DeFi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해당 인터페이스들에게 유저 KYC를 의무적으로 마치게 한다면 이는 자유로운 금융 접근이라는 DeFi의 가치에서 벗어나 금융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금융당국에 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CFTC의 수수료 부과는 이에 더해 비용적 부담마저 늘리게 된다.
SBF는 프론트-엔드 GUI들이 중앙화 클라우드 서비스(e.g. AWS, Azure)를 통해 호스팅되고 있고, 그에 대한 사용대금 역시 중앙화된 결제시스템을 통해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DeFi 어플리케이션이 이미 규제당국의 관할권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밸리데이터 및 코드 개발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SBF의 제안을 한 막무가내 사업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생각과 말은 워싱턴에서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그는 거물급 로비스트이다. 지난해와 올해에만 공화당/민주당 가리지 않고 총 4500만 달러 이상 기부했으며, 수령인 명단에는 책임금융혁신법(RFIA) 발의자 Kirsten Gillibrand와 DCCPA 발의자 Debbie Stabenow가 포함되어 있다. 두 상원의원 모두 FTX를 비롯한 CEX에 우호적인 법안을 발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5. 창펑자오 입장
창펑자오가 이러한 SBF의 로비 활동을 비판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창펑자오는 중국과 캐나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치권에 연줄이 없다. 반면 SBF는 거물급 로비스트로서 가상자산 관련 법안 제정에 있어 실무적인 권한을 가진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창펑자오는 SBF가 정책 입안자들과 독점적인 대화 창구를 가지는 만큼, 법안에 FTX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바이낸스와 같은 경쟁 CEX에 불리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우려를 했을 것이다.
창펑자오의 의심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바로 SBF가 OFAC의 온체인 블랙리스트 관리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바이낸스 웹사이트 접속자 기준 각 2위, 5위,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Crimea, Donetsk, Luhansk 限), 베네수엘라 모두 OFAC 제재 대상국이다. OFAC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게 된다면 전체 트래픽의 10% 이상이 되는 유저를 순식간에 잃게 되는 셈이다. 바이낸스는 그 밖에도 터키와 같이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신흥국 내에 유저 베이스가 두텁기 때문에 OFAC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게 될 경우, 시장 점유율을 잃게 될 잠재적인 리스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바이낸스는 BSC(Binance Smart Chain)이라는 자체 메인넷을 운영하고 있다. 창펑자오는 향후 수년 이내에 가상자산 거래시장이 CEX에서 DEX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BSC가 DEX 시장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것을 꿈꾼다(자세한 내용은 관련 쟁글 리서치 참고). DeFi, 특히 DEX에 대해 불리한 조항을 담고 있는 DCCPA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SBF가 달가울리 없었을 것이다.
6. 규제 핵심 원칙
DCCPA를 둘러싼 이념 갈등과 규제의 부재는 결국 FTX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더욱 강력한 법안 도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더 이상 가상자산 규제 도입은 불가피하다. 완전한 관리 감독을 강제하는 TradFi식 규제를 고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무작정 탈중앙화와 무개입의 원칙만을 내세우는 것도 올바른 규제를 세우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가상자산 규제 도입에 있어 필수적인 3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 국제적으로 통일된 가상자산 택소노미
- TradFi와 DeFi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이해
- 공시의 의무화
6-1. 국제적으로 통일된 가상자산 택소노미
가상자산을 분류하는 세부 택소노미는 국제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현재 국가별로 계류 중인 여러 가지 법안들을 살펴 보면 가상자산에 대한 분류법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발행/유통자, 거래 플랫폼, 투자자 등 생태계 참여자들의 입장에서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국가별로 가상자산 분류별 규제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구분법은 같아야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컨대 X라는 가상자산이 A국가에서는 스테이블코인, B국가에서는 상품으로 각기 다르게 분류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A국가는 담보자산에 대한 주기적인 감사를 진행하도록 요구하는데, B국가는 별도의 감사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X의 발행/유통자 입장에서는 감사를 비롯한 까다로운 규정들을 번거롭게 준수해 가면서까지 A국가에 X를 상장시킬 유인이 없을 것이다. 프로젝트 입장에서 국가별로 상이한 컴플라이언스 규칙을 숙지하고 대응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비용 부담도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에 가장 호의적인 분류를 받은 국가에만 상장을 하게 될 것이고, 결국 국가간 이동이 자유로운 가상자산의 이점은 사실상 무효화된다.
규제당국 입장에서도 가상자산 관련된 시장 리스크를 진단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경없이 유통되는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할 수 있고 일관된 데이터에 대한 액세스가 필요할텐데, 공동의 글로벌 택소노미 없이는 데이터 수집이 어렵고 완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통 금융자산의 경우 이미 다양한 글로벌 택소노미를 적용 중이다. 150여개국 이상이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금융자산을 분류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거래소들이 상장사 섹터 분류에 있어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 Global Industry Classification Standard) 또는 산업분류벤치마크(ICB; Industry Classification Benchmark)을 차용하고 있다. 규제의 최소 분모인 택소노미는 통일함으로써,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국가간 협력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가상자산 택소노미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을 고려한 실무 차원에서 대입 가능한 프레임워크(Howey Test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에 기반해 설정되어야 하며, 분류별로 겹치는 자산이 없이 상호 배타적(Mutually exclusive)이어야 한다. 각 규제당국, 또는 글로벌 표준설정 기관(SSB; Standard Setting Bodies)에 의해 분류별 가상자산 리스트도 명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 실무 차원에서 대입 가능한 프레임워크 기반
- 상호 배타적 분류
- 글로벌 표준설정 기관이 명확한 분류별 가상자산 리스트 제시
6-2. TradFi와 DeFi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이해
나아가 글로벌 택소노미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TradFi와 DeFi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올 10월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TradFi 정책들은 DeFi를 규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위원회는 또한 감독기관이 TradFi처럼 규제 준수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될 법적 실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중개인 없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시켜주는 DeFi의 특성상 법적 실체를 구분짓기 어려우며 그렇기 때문에 감독기관이 현실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DeFi 영역에 섣부른 정책 개입을 하기 이전에 서비스 유저들의 편익과 규제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U는 이를 바탕으로 가상자산 관련 단독 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를 발의했으며, 스테이블코인과 같이 전통금융시스템과 접목되어 있는 일부 영역부터 규제를 도입해 나갈 예정이다. 높은 기술적 이해도와 현실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배경 지식 없이 섣불리 TradFi의 프레임워크를 DeFi에 대입하려 보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DCCPA가 그 예시다. 충분한 스터디를 거친 뒤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영역부터 규제를 적용해 나가야 한다.
6-3. 공시의 의무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관리/감독은 필요한데, 권한 기반(Permission-based)이 아닌 투명성 기반(Transparency-based)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개발자가 감독기관의 인허가 없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개발/배포하고 이를 활용해 개인이 자유롭게 금융활동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되, 투자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들에게 특정 정보들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는 아래의 정보를 공공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시해야 할 것이다:
- 백서
-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결과
- 토크노믹스
- 토큰 유통/발행량
기업의 사업보고서가 일정한 양식에 맞추어 작성되어 투자자들이 보다 쉽게 기업의 재무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올바른 투자를 할 수 있듯이 가상자산의 백서,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결과, 토크노믹스도 마찬가지로 투자자 가독성을 강조한 양식에 맞추어 단일 공공 플랫폼에 공개되어야 한다.
백서/토크노믹스는 최초 상장 또는 로드맵이 변경되는 시점,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결과는 최초 상장 또는 코드가 변경되는 시점에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며, 토큰 유통/발행량의 경우 관련 온체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어야 한다.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악의적인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처벌하는 것 이외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감독기관의 역할일 것이다.
7. 마치며
- 국제적으로 통일된 가상자산 택소노미: 범국가 협력 & 효율적인 리스크 모니터링
- TradFi와 DeFi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이해: 금융 안정성 & 법적 확실성
- 공시의 의무화: 소비자 보호 & 시장 완전성
IMF는 올 9월 “가상자산 생태계의 행정 및 행동 규제에 관한 권고안(Recommendations for Prudential and Conduct Regulation of the Crypto Ecoyststem)”을 통해 가상자산 규제 도입에 있어 정책 목표 6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앞서 제시한 3가지 핵심 원칙만 지켜진다면 모든 정책 목표를 아우르는 건설적인 규제안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FTX의 몰락으로 하루빨리 규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성급하게 만들어진 법안으로는 또 한번의 FTX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정책 입안자들과 가상자산 커뮤니티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규제라는 숙제를 함께 천천히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FTX' 관련 리서치 보기
- FTX 사태 이후 솔라나와 레이어1 생태계 점검
- 알라메다-FTX 파산 및 시사점
-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미국 도산법 Chapter 11 신청
- FTX 전염병에 걸린 Genesis와 DCG
- FTX 파산보호 신청,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