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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서 (twi)
Research Intern/
쟁글
2026.02.20

목차

1. 몰트봇의 등장과 새로운 신뢰 주체의 필요성 대두

2. 인간 증명에서 신뢰 증명으로

2-1. 인간 증명(Proof of Humanity)의 한계

2-2. 신뢰 증명(Proof of Trust)의 필요성

2-3.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해결 방식

3. Trust의 토큰화 : 신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증명 가능한 자산’으로

3-1. Trust 토큰화의 개념

3-2. 토큰화된 신뢰가 만드는 변화

4. 모든 신원의 프라이버시 보호 : 증명은 강하게, 노출은 제로로

4-1. 기존 신원 모델의 실패

4-2. Zero-Knowledge 기반 신원·신뢰 구조

4-3. 사용자 주권(Identity Sovereignty)와 신뢰 레이어(Trust Layer)

5. 결론: 새로운 인터넷의 신뢰 레이어

 

1. 몰트봇의 등장과 새로운 신뢰 주체의 필요성 대두

창세기 1장에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이 서사는, 인간 역시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 해온 오랜 욕망을 떠올리게 한다. 피그말리온 신화에서부터 피노키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언제나 자기와 닮은 존재를 상상하고, 빚어내고, 생명을 부여하려 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그 야심찬 시도는 거의 현실에 도달한 듯 보인다. ChatGPT의 등장 이후 LLM들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왔고, 이제는 많은 상황에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은 이러한 변화를 마주하며 AI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으로 튜링 테스트를 제시했다. 인간과 유사하게 반응하는 기계와 자연어로 대화했을 때, 상대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그것을 지능의 징표로 보자는 발상이었다. 수행 능력의 비구별성을 지능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한때 인간과 AI를 가르는 상징적인 경계선이었다. 기계가 인간처럼 말할 수 있는지를 통해 지능의 존재를 판단하려는 시도였다. 초기에는 이 테스트가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초기 LLM들은 종종 엉뚱하거나 단순한 답변을 내놓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할루시네이션 문제도 두드러졌다. 그 미숙함은 오히려 인간과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신호였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 이 테스트는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AI는 단순히 인간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맥락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덜 정교하게 행동하는 경우까지 등장했다. 인간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인간다움을 전략적으로 연출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등장한 자율 에이전트 생태계, 특히 몰트봇(Moltbot, 현 OpenClaw)과 몰트북(Moltbook)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몰트봇이란 클로드(Claude) 3.5 소넷 등의 AI 모델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PC나 서버에서 직접 동작하며 터미널 명령, 파일 시스템 제어, 자동화 작업을 수행하는 강력한 오픈소스 AI 에이전트이다.

몰트북은 이런 몰트봇를 위한 플랫폼으로, 에이전트들끼리 상호작용하고 협업하는 공간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중심적 행위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로 밀려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가 인간의 대화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설득력 있으며, 때로는 더 섬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지켜보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믿음을 형성해야 하는가.

이 현상은 단순히 AI의 성능 향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다. 이는 “정보의 문제에서 신뢰의 문제로”라는 전환을 한층 더 밀어붙인다. 과거에는 “이 콘텐츠가 인간이 작성했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이 에이전트는 누구의 소유인가, 어떤 권한을 위임받았는가”라는 질문이 중심이 된다. 더 나아가 “이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에게 조작당하거나 악성 지시를 받았을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등장한다. 신뢰의 단위가 인간에서 에이전트로 이동하면서, 책임의 경계 역시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사실인가를 따지기 전에, 누가—혹은 무엇이—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가를 먼저 묻는 시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 고유의 신뢰 메커니즘, 즉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책임을 감수하는 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디지털 구조 안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에이전트가 인간을 대신해 행동하는 시대에는 단순한 인간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권한의 범위, 책임의 귀속, 통제 가능성을 포함하는 새로운 신뢰 체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신뢰를 전제로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증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현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2. 인간 증명에서 신뢰 증명으로

2-1. 인간 증명(Proof of Humanity)의 한계

앞서 몰트봇 사례에서 보았듯이, 몰트봇은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동시에, 적절한 권한 통제가 없다면 어디까지 확장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한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AI는 인간에게 최고의 조력자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위험을 아무렇지 않게 실행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AI의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에 어떤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가에 있다. AI와 인간을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지금, 핵심 질문은 더 이상 “인간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단순한 해법은 모든 위험한 결정을 인간에게만 맡기고, 해당 행위자가 인간임을 증명하면 통과시키는 구조, 즉 인간 증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예전 봇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접근방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쟁글 리서치 휴머니티 프로토콜 "진짜 휴먼만 입장 가능합니다"참고)

그러나 이는 자동차 사고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동차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AI가 이미 인간과 동등하거나, 일부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인간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병목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단순히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더 이상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특히 AI가 블록체인 위에서 금융 시스템과 직접 상호작용하게 될 미래를 고려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 주체가 인간인지 AI인지가 아니라, 어디까지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일이다. 다가오는 RWA 시대 속에서 AI 에이전틱 이코노미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인간 여부를 증명하는 장치가 아니라, 행위의 자격과 범위를 증명하고, 맥락 속에서 신뢰를 정산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단계를 넘어, 신뢰 그 자체를 증명할 필요성이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

2-2. 신뢰 증명(Proof of Trust)의 필요성

앞서 언급했듯이, AI 에이전틱 이코노미 시대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누가 인간인가”가 아니다. 이제 문제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기존의 인간 증명과 달리 신뢰 증명은 AI 시대에 훨씬 더 적합한 접근 방식이 된다. 영지식 증명과 생체 정보를 활용한 인간 증명은 해당 주체가 인간임을 입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 주체의 권한을 자동으로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정보를 제출한다고 해서 그 행위의 정당성이나 범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정체성은 증명될 수 있지만, 권한과 자격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신뢰가 고정된 정체성이나 단일한 실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는 복합적이고 맥락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된다. 특정 조건과 범위 안에서 정의되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금융 거래에서 요구되는 신뢰의 수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요구되는 신뢰와 다르다. 정부 기관이 요구받는 신뢰와 개인 블로거가 요구받는 신뢰 역시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인간임’을 검증하는 정체성 증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넓은 범위와 더 정교한 레이어가 필요하다. 신뢰를 구성하는 자격, 권한, 맥락을 함께 다룰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신뢰 증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넘어서, “이 주체가 특정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를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다른 신뢰 주체가 없이도 증명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신뢰를 완벽하게 증명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제 3의 존재를 신뢰한다는 것은 순환논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신뢰를 완벽히 보증하기 위해선, 제 3의 존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뢰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증명을 넘어선 Proof of Trust, 즉 신뢰 증명의 개념이다. 신뢰 증명은 신뢰를 구조적으로 증명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여, 자격과 범위를 암호학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다. 여기서 신뢰는 검증 가능하고, 재사용 가능하며, 맥락에 따라 정밀하게 적용될 수 있는 자산으로 취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실제로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려는 시도가 바로 휴머니티 프로토콜이다.

2-3.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해결 방식

휴머니티 프로토콜은 대부분의 기존 시스템처럼 신뢰를 가정하거나, 단순히 데이터를 제출받아 간접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 반대로, 신뢰를 암호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상태로 정의하고, 이를 정산하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앞서 말했듯이 핵심은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주체가 특정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특정 신뢰 주체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증명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를 위해 휴머니티 프로토콜은 Human ID, Verifiable Credentials, 영지식 증명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Human ID는 실존하는 인간 또는 조직임을 증명한다. 과거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손바닥 정맥 인식을 통해 인간 여부를 확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유일한 행위자를 정의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신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 쌓이는 것이 Verifiable Credentials다. 이는 자격, 권한, 규제 적합성, 역할, 상태 등을 표현하는 신뢰 신호다. 예를 들어 해당 사용자가 특정 금융 자격을 보유했는지, 특정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지, 특정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지 등을 증명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신뢰는 맥락을 갖는다.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조건부 행위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누구인가”를 넘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신뢰를 확정하기 위해 또 다른 제3자를 가정하는 것은 결국 순환논법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증명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영지식 증명이다. 영지식 증명을 통해 시스템은 “조건이 충족되었는가”만을 확인하고, 그 조건을 구성하는 개인 데이터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대신, 필요한 사실만을 증명한다. 신뢰와 감시를 분리하는 구조다.

이 점에서 기존 KYC 솔루션이나 ID 지갑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존 KYC는 특정 기관 내부에서만 유효한 일회성 검증에 가깝고, ID 지갑은 정보를 저장하는 도구에 머문다. 반면 휴머니티 프로토콜은 신뢰를 이동 가능하게 만들고, 여러 플랫폼과 체인, 기관 사이에서 조합 가능하도록 설계한다.

이제 신뢰는 특정 플랫폼 내부에 갇혀 있지 않다. 체인과 시스템을 넘나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다. 서로 다른 신뢰 신호가 결합되어 더 높은 수준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고, 조건이 변경되면 신뢰 상태 역시 동적으로 조정된다. 이는 신뢰를 정적인 속성에서 작동하는 인프라로 전환하는 변화다.

결국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구축하는 것은 “누구인가”를 묻는 시스템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를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신뢰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다. 계산되고 정산되는 상태다. 그리고 그 순간, 신뢰는 비용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적 레이어로 전환된다.

 

3. 신뢰의 토큰화– 신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증명 가능한 자산’으로

3-1. 신뢰 토큰화의 개념

앞서 말했듯이 AI 시대에서 신뢰 증명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만 멈춘다면, 신뢰 증명이 의미하는 바의 절반만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 핵심은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신뢰 증명” 그 자체가 하나의 인증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산의 형태로 토큰화된다면, 금융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상당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인증 체계는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중앙집중형 구조 위에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확장성과 검증 구조를 신뢰 증명에 도입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휴대폰 인증이나 신용카드 사용과 같은 일상적인 영역부터 금융 업무, 부동산 거래에 이르기까지, 단일한 표준을 채택함으로써 인증에 들어가는 수많은 중복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준은 무엇을 바꾸는가. 변화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ID에서 크리덴셜로, 계정에서 증명으로, 그리고 로그인에서 검증으로의 전환이다.

기존 방식은 하나의 ID를 통해 계정을 만들고, 그 계정에 로그인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에 접근하려면 다시 새로운 ID를 만들고, 또 다른 계정을 생성한 뒤 로그인해야 한다. 이 반복 과정이 불필요한 비용과 관리 부담을 만들어낸다.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바꾸려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방식이 아닌, 모든 곳에 적용 가능한 단 하나의 “신뢰 증명”이다. 다시 말해 모든 곳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크리덴셜(자격)을 기반으로, 각 플랫폼에서 별도의 계정을 만들 필요 없이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생성한 증명을 제출하면 된다. 더 이상 계정에 로그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출된 증명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체성과 신뢰를 정적인 정보에서 동적인 인프라로 바꾼다. 신뢰는 특정 서비스에 묶여 있는 데이터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증명되고 재사용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 된다. 이는 단순한 사용자 경험의 개선을 넘어, 인터넷 신뢰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변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행위의 주체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설령 버튼을 누른 존재가 내 손가락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나의 지시와 판단에 따른 것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증명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어떤 중앙화된 주체나 특정 체인의 소유여서는 안 된다.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ZK 기반 증명 구조를 통해, 제3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 증명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검증할 수 있게 된다.

3-2. 토큰화된 신뢰가 만드는 변화

이처럼 토큰화된 신뢰는 하나의 인증 표준(standard)으로 자리 잡으면서, 개별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기업 전반의 신뢰 레이어로 확장될 잠재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비전은 단순한 가능성 수준이 아니라 실제 기업 단위의 채택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스터카드다.

웹3 신원 인증 프로젝트 휴머니티 프로토콜은 마스터카드의 Open Finance 기술과 통합을 발표하며, 사용자가 Human ID를 통해 신용·대출 등 실물 금융 서비스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시했다. 이번 통합은 마스터카드의 개방형 금융 데이터 연결성과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ZKP(영지식 증명) 기반 신원 검증 구조를 결합한 모델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재무 상태를 증명하면서도 민감한 개인정보는 노출하지 않는 선택적 공개(Selective Disclosure)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Human ID 보유자는 급여 수준, 현금 흐름, 자산 보유 여부 등을 개별 서류로 제출하지 않고도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소득 7만 5천 달러 이상” 혹은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 없이 상환 중”이라는 조건을 마스터카드의 금융 데이터 네트워크를 통해 검증받고, 이를 ZKP 형태로 다양한 금융 및 블록체인 서비스에 제출할 수 있다. 이는 반복적인 KYC 절차를 제거하고, 하나의 검증된 크리덴셜을 여러 플랫폼에서 재사용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프라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금융 접근성이 낮은 사용자에게 비침해적 방식의 금융 포함(financial inclusion)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협력은 단순한 파트너십 차원의 이벤트가 아니다. 앞서 논의했듯이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구조는 기업 채택을 통해 네트워크 효과가 강화되는 모델이다. 금융기관이나 플랫폼이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검증 솔루션을 도입하면, 각각의 검증된 Human ID가 시스템 전체의 유틸리티를 높인다. 크리덴셜이 누적될수록 신뢰의 재사용성이 증가하고, 이는 자연스러운 락인(lock-in) 효과로 이어진다.

중요한 점은 이 메커니즘이 특정 블록체인이나 토큰 가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심은 ‘검증된 인간 크리덴셜의 재사용성과 확장성’에 있다. 이를 통해 프로토콜은 개별 체인을 넘어 인터넷 전반의 신뢰 레이어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

마스터카드가 휴머니티 프로토콜을 크리덴셜 발행자로 전략적 가치가 있는 파트너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 부재했던 보편적 인간 신뢰 인프라를 보완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선점 효과를 확보하고, 기존 금융 신뢰 네트워크를 인간 중심의 검증 레이어로 확장해 엔드투엔드 솔루션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1월 발표된 Open Finance 통합은 이러한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ZK 기반의 portable credential은 KYC 비용을 절감하고 사기를 방지하면서, 동시에 재사용 가능한 신뢰 자산을 축적한다. 이는 단순한 신원 인증을 넘어, 새로운 신뢰 기반 경제의 기반을 형성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4. 모든 신원의 프라이버시 보호 – 증명은 강하게, 노출은 제로로

4-1. 기존 신원 모델의 실패

하지만, 신뢰 증명과 토큰화된 신뢰는 그 자체로 한 가지 약점을 품고 있다. 바로 신뢰의 증명을 만드는 주체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지, 다시 말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사실 이미 정부나 기업에서 수 없이 많은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은 이러한 중앙화된 신원 모델은 여러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첫째, 과도한 데이터 수집이 있다.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 이름,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정부 발급 ID, 생체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요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검증에 필요한 최소 범위를 훨씬 초과한다는 점이다.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은 오히려 새로운 위험을 낳는다.

둘째, 중앙화된 저장 구조 역시도 문제점으로 지적 받는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사용자 데이터를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단일 실패 지점을 만든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대규모 데이터 유출 사건을 생각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엄청난 리스크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함의한다. 신원 정보는 한 번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으며, 피해는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마지막으로, 반복적인 재검증이 있다. 사용자는 서비스마다 동일한 정보를 반복 제출해야 하며, 기업은 이를 다시 검증한다. 이 과정은 막대한 비용과 마찰을 발생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예전 공인인증서와 ActiveX가 있다. 사용자는 어떤 서비스를 사용할 때마다 새로 깔아야 하는 ActiveX 와 공인인증서 보안프로그램 때문에 피로를 호소했다. 게다가 특히 금융과 규제 산업에서는 KYC와 AML 절차가 반복적으로 수행되며, 이는 효율을 저하시킨다.

AI 시대에 이 구조는 더욱 취약해진다. 데이터 노출은 단순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라 공격 표면의 확대를 의미한다. AI는 유출된 데이터를 활용해 정교한 사기, 신원 도용, 사회공학적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을수록 더 큰 리스크가 발생하는 역설적 구조가 형성된다. 기존 신원 모델은 신뢰를 강화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그리고 여기서,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중요한 혁신이 드러난다. 바로 ZK 기반 구조를 통해, 제 3자의 신뢰 없이 오로지 수학적 증명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4-2. Zero-Knowledge 기반 신원·신뢰 구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접근은 영지식(Zero-Knowledge, ZK) 기반 신뢰 구조다. 기존 시스템이 신뢰를 데이터 제출과 사후 검증에 의존했다면, ZK 구조는 신뢰를 “조건 충족 여부”라는 형태로 재정의한다. 핵심 원칙은 단순하다. 필요한 사실만 증명하고, 그 사실을 구성하는 원본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지식 증명은 암호학적 프로토콜이다. 증명자(Prover)가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검증자(Verifier)에게 입증하되, 그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 외의 어떠한 정보도 노출하지 않는다. 이때 세 가지 성질을 만족해야 한다.

  1. 완전성(Completeness) – 명제가 참이면 정직한 검증자는 이를 항상 받아들인다.
  2. 건전성(Soundness) – 명제가 거짓이면 부정직한 증명자가 이를 속이기 어렵다.
  3. 영지식성(Zero-Knowledge) – 검증자는 명제의 진위 외에는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비밀 값 xxx에 대해 공개 조건 C(x)=1C(x) = 1C(x)=1임을 증명한다고 하자.

검증자는 xxx 자체를 알지 못한 채, 오직 C(x)=1C(x) = 1C(x)=1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특정 연령 이상인지, 특정 금융 자격을 갖추었는지, 특정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검증한다고 가정해보자. 기존 방식은 d생년월일, 자격증 번호, 상세 재무 정보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반면 ZK 구조에서는 “만 19세 이상이다” 혹은 “연소득 7만 5천 달러 이상이다”라는 조건 충족 여부만을 증명한다. 구체적인 생년월일이나 세부 소득 정보는 암호화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설령 데이터가 유출되더라도 원본 값은 복원할 수 없다.

이 접근은 프라이버시를 단순한 보호 장치가 아니라 신뢰 구조의 핵심 원리로 끌어올린다. 데이터를 최소화할수록 공격 표면은 줄어든다. 저장해야 할 민감 정보가 적어질수록 해킹 리스크도 감소한다. 동시에 검증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필요한 조건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휴머니티 프로토콜은 그 어떤 원본 정보를 저장할 필요 없이, 오로지 이 증명값 만으로 검증을 완료할 수 있다.

이처럼 ZK 기반 신뢰 구조는 신뢰와 감시를 분리함으로써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를 뒤집는다.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면 충분하다. 이 지점에서 신뢰는 데이터 축적의 문제가 아니라, 암호학적으로 계산되고 검증되는 구조의 문제로 전환된다.

4-3. 사용자 주권(Identity Sovereignty)와 신뢰 레이어(Trust Layer)

이처럼 영지식 증명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하지만 ZK는 단순히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 아니라, 이는 곧 사용자의 데이터 주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보는 중앙화된 주체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어 왔다. 반면, 데이터의 탈중앙화와 토큰화를 통해 사용자가 직접 신뢰를 보유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증명이 표준으로 자리 잡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다. 더 나아가 이는 빅테크에 집중되어 있던 개인정보 권력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는 핵심적인 전환점이 된다. 단순히 정보를 인증하는 수준을 넘어, 다가올 에이전틱 이코노미에서 기본이 되는 신뢰를 담당하는 인프라, 즉 Trust Layer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영지식 기반 구조는 권력의 배치를 바꾼다. 기존 모델에서는 플랫폼과 기관이 데이터를 소유하고 통제했으며, 사용자는 자신의 신원 정보를 여러 서비스에 반복적으로 제출한 뒤 관리 권한을 사실상 상실해왔다. 설령 플랫폼이 그 정보를 과도하게 활용하더라도, 사용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반면 사용자 주권 모델에서는 데이터 소유권이 사용자에게 귀속된다. 신원(ID)과 신뢰 크리덴셜은 사용자가 직접 보유하고, 기업과 시스템은 원본 데이터가 아니라 검증 결과만을 확인한다. 중앙 서버에 정보를 복제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조건을 증명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신원과 신뢰는 이동 가능하고 재사용 가능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된 계정이 아니라, 여러 시스템에서 동일하게 검증 가능한 크리덴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반복적인 재검증과 데이터 중복 제출을 줄일 수 있고, 신뢰는 플랫폼 간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바로 이 지점이 휴머니티 프로토콜을 AI 시대의 핵심적인 신뢰 레이어로 작동하게 만드는 이유다. 신뢰는 더 이상 중앙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사용자가 보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증명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휴머니티 프로토콜을 신뢰 레이어로 사용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동인이 된다.

지금까지는 능력이 권한보다 더 희소했다. 뛰어난 지능과 전문성을 가진 개인이나 조직이 인터넷과 디지털 경제의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희소한 것은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의 발전으로 지능의 한계비용이 극단적으로 낮아진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능력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언제든 호출할 수 있고, 복제 가능하며, 확장 가능한 자원이 되었다. 이 환경에서 진짜 희소해진 것은 능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조건에서 접근할 수 있는가, 책임은 어디까지 귀속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제공하는 신뢰 레이어의 의미가 드러난다. 능력이 넘쳐나는 시대에 질서를 만드는 것은 권한의 구조이며, 그 권한을 계산하고 검증하는 인프라가 곧 인터넷의 핵심 레이어가 된다. 그런 점에서 신뢰 레이어는 선택적 기능이 아니라, AI 시대의 기본 인프라가 될 수밖에 없다.

 

5. 결론: 새로운 인터넷의 신뢰 레이어

AI 에이전트가 인간을 대신해 행동하고, 금융과 자산이 온체인에서 직접 움직이며, RWA가 디지털 환경과 결합되는 시대에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를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검증은 특정 기관의 승인이나 중앙 서버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수학적 증명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제안하는 구조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Human ID는 유일한 행위자를 정의하고, Verifiable Credentials는 맥락과 자격을 부여하며, 영지식 증명은 이를 프라이버시 침해 없이 증명한다. 신뢰는 더 이상 플랫폼 내부의 데이터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조합되고 이동하며 재사용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 된다.

이때 신뢰는 중앙화된 주체가 발급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아니다. 사용자가 보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증명하며, 다양한 체인과 시스템을 넘나들 수 있는 이동 가능한 신뢰 레이어다. 기업과 기관은 원본 데이터를 소유하는 대신, 검증 결과만을 소비한다. 감시는 줄어들고, 검증은 강화된다.

이 구조가 정착되면 인터넷은 더 이상 계정과 로그인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증명과 검증 중심으로 작동한다. 신뢰는 플랫폼에 종속된 속성이 아니라, 인터넷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 인프라가 된다. 서로 다른 신뢰 신호가 결합되어 더 높은 수준의 신뢰를 형성하고, 조건이 바뀌면 그 상태 역시 동적으로 조정된다.

결국 새로운 인터넷의 핵심은 데이터가 아니라 신뢰 레이어이다. 정보 위에 신뢰가 쌓이고, 신뢰 위에 경제가 형성된다. 신뢰는 비용이 아니라, 계산되고 정산되며 축적되는 경제적 레이어가 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인간과 AI는 구분의 대상이 아니라,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권한과 책임이 정의되는 행위자가 된다. 이것이 AI 시대에 필요한 신뢰 구조이며,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인터넷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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