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왜 Web3가 필요할까?
“왜 Web3가 필요할까?” 이 질문은 오랜 기간 크립토 업계에 몸담으면서 늘 마음속에 품으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질문이다. 솔직히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이 코인 업계에 뛰어드는 현실적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거다. 그래도 업계에서 리서치를 하고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스터디 하는 입장에서, 이 산업이 왜 의미가 있고 결국 잘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답을 찾고 싶었다. a16z의 크리스 딕슨이 “Own”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은 것처럼. 수년간 산업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 글은 그 과정의 일부로, Web3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현 시대정신으로 부상할 잠재력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2. 폭력사태로 표출되기 시작한 빈부격차
갑자기 왠 빈부격차 이야기일까 싶지만 이야기를 조금은 돌아가 보자.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시위와 항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정부의 긴축 예산안에 반대하는 이른바 “모든 것을 봉쇄하자(Block Everything)”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표면적인 도화선은 재정균형을 위한 예산 삭감이었지만, 그 부담이 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대중의 분노를 불렀다. 이미 프랑스 사회에서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컸고, 정부의 긴축 정책이 이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시위의 불씨가 되었다. 실제 시위대는 “부유 엘리트의 공화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치 엘리트와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출처: AP연합뉴스)
한편 네팔에서는 더 격렬한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차단하자 이에 항의하는 젊은 층의 시위가 전국으로 퍼졌고, 결국 네팔의 총리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하루 만에 1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정부 관료들이 폭행 당할 정도로 유혈 사태로 비화된 이 시위의 배경에는, 단순히 온라인 플랫폼 차단에 대한 불만을 넘어서 기회 불평등과 경제적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네팔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을 정도로 일자리 부족이 심각해 많은 젊은이가 해외로 떠나는 반면, 국내 경제의 핵심 산업과 고위 공직은 정치 권력자 가문 출신들의 독점적 세습 구조가 고착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득권 네트워크에 대한 분노가 소셜미디어 차단을 계기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의 배경에는 지난 수십 년간 심화되어 온 빈부격차가 깔려 있다. 통계 지표를 보면 부의 불평등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상위 0.1% 부자들이 보유한 부의 비중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전체 부의 20%를 넘어서며 당시 수준을 재현했다. 반면 하위 90%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은 1980년대 중반 약 35~36%까지 갔다가 최근 23% 수준으로 급감하여, 100여 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상황이다. 아래 차트에서 보듯, 1910~30년대 세계대전을 겪던 시기의 불평등 수준이 21세기에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이러한 부의 격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1950~70년대에는 세계 경제의 고성장과 풍부한 고용 기회 덕에 노동자 임금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며 불평등이 완화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시장을 보면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간 임금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AI 등 첨단 기술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극소수 인재에게 보상이 집중되고 있으며, 그 격차는 2025년, 2030년으로 갈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메타(META)가 24세 AI 연구자를 영입하기 위해 4년간 2억5천만 달러(약 3,500억 원)에 달하는 조건을 제시한 사례는 오늘날 임금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한편, 미국 S&P 500 기업의 CEO들은 현재 일반 노동자의 290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는데, 이는 1965년 21배 수준에서 무려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런 사례들은 노동 소득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산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기업별 부의 쏠림 현상도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등의 빅테크 상위 10개 기업이 전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20년대나 1970년대 니프티 피프티 시대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전체 시가총액의 20% 미만이었던 S&P 500 지수 상위 10개 기업의 비중은 2024년에 이르면 38% 수준까지 치솟았다. 특히 사우디 아람코를 제외하면 이들 상위 기업 대부분이 소수 정예 인력으로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내는 빅테크 기업이라는 점에서, 전통 산업 대비 극소수 인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이러한 산업 집중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와 네팔의 격렬한 시위는 이렇게 누적되어 온 불평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생기면서 표면화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 각국에서 극우나 극좌 등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사회 통합적 합의는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종·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국가마다 국경을 걸어잠그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렇게 부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사회는 종종 혁명이나 전쟁이라는 파국을 겪곤 했다. 권력이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다가(‘타워’의 시대) 다시 대중이 분출하는 움직임(‘광장’의 시대)으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렇기에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래엔 부의 분배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지식과 권력을 중앙에서 민중에게 분산시켰듯이, 21세기에 그러한 역할을 할 무언가가 재현될 수는 없을까? 나는 Web3가 그 열쇠가 될 가능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Web3는 '부의 분배'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3. Web3, 21세기 시대정신으로 부상
기존 자본주의 체제와 Web2 인터넷 기업들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Web3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Web3는 ‘커뮤니티에 대한 가치 분배’를 핵심 모토로 내세우며, 기존 인터넷 플랫폼과 금융기관이 독점하던 권력과 경제 구조를 개인과 커뮤니티에게 되돌려주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Web3 생태계가 지향하는 이러한 철학과 문화야말로 앞으로의 정치·사회적 분배 요구를 충족시킬 보편적 가치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Web3의 보상과 분배 구조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대중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일반 대중에게 탈중앙화나 블록체인 트릴레마 같은 기술적·철학적 담론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이 서비스가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가, 혹은 편익을 주는가이다. 그런 면에서 Web3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직면한 생계 문제, 즉 먹고사니즘의 일부를 해결해줄 잠재력이 있다.
앞으로도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Web3의 가장 큰 차별성은 분배 문화에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구조가 정착된다면 Web3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아래 사례들은 기존 Web2와 비교해 Web3가 얼마나 다른 스탠스를 취하는지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1) Axie Infinity – Web3가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준 게임
3년 전 Axie Infinity는 Web3의 잠재력을 세상에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 Play-to-Earn 게임을 통해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Axie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고, 한때 일 활성 사용자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당시 플레이어들의 월 수입은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달했고, 게임으로 번 돈으로 집을 샀다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물론 기존 온라인 게임에서도 일명 작업장을 통해 게임 머니를 현금화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토큰 이코노미가 결합된 Web3 게임은 그 규모와 파급력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Play-to-Earn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Axie Infinity는 게임의 경제적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후 메타버스와 크립토 시장 침체로 이용자가 줄어들면서 서비스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를 남기긴 했지만, Web3 서비스를 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준 것은 분명했다.
2) Blur – 같은 서비스라면 보상을 주는 쪽을 택한다
Axie 이후 Web3 서비스의 분배 철학이 얼마나 강력한 사용자 유인 동력이 되었는지 다시 확인해 준 사례가 블러(Blur)다. 2021년 NFT 시장이 개화했을 당시 오픈씨는 90% 이상의 점유율로 절대강자였다. 많은 투자자는 오픈씨의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와 일찌감치 구축한 플랫폼 우위를 근거로 NFT 시장의 영원한 독점자가 될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그 논리에 힘입어 2022년 1월 오픈씨는 기업가치 약 13.3B달러(약 19조 원)를 인정받으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렇게 견고해 보이던 NFT 마켓에 한 순간에 균열을 프로젝트가 바로 블러다. 오픈씨가 여느 Web2 플랫폼처럼 2.5% 수수료를 부과하고, 회사가 그 이익을 독점하는 사이, 블러는 정반대 전략을 취했다. 0% 수수료로 사용자와 크리에이터를 끌어모은 데 이어, 자체 토큰을 발행하며 총 공급량의 50%를 플랫폼 사용자에게 에어드롭으로 분배했다. 이는 과거 Axie와 Uniswap 등에서 가능성을 보인 ‘사용하면 돈을 번다’는 공식을 NFT 마켓플레이스에도 적용한 것이다.
결과는 명확했다. 블러는 출시 몇 달 만에 오픈씨의 시장 지배력을 흔들었다. 2022년 초 정점이었던 오픈씨의 점유율은 지속 하락해 2024년초 기준 10% 안팎까지 떨어졌다. 한편 BLUR 토큰을 받은 사용자들은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서며 블러의 점유율을 최대 50%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24년엔 매직에덴의 에어드롭 기대감이 높아지며 매직에덴의 점유율이 늘어났고, 2025년에 들어서는 오픈씨도 토큰 출시 가능성을 시사하며 보상을 기대한 유저들이 다시 오픈씨로 몰리며 시장 구도가 재편되었다. 현재는 블러와 오픈씨가 에어드롭 파밍을 노리는 유저들을 중심으로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블러의 커뮤니티 지분 50% 할당 전략이 결국 오픈씨마저 토큰을 발행하도록 압박한 셈이다.

즉, 같은 NFT 거래 플랫폼이라도 Web2 방식의 오픈씨보다 Web3 철학을 도입한 블러가 유저들에게 훨씬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BLUR 토큰 총량 중 50%(약 5,000억 원 상당)를 유저와 커뮤니티에 분배한 결정은 유저를 유입시킨 핵심 전략이었던 것이다. 만약 오픈씨가 블러 등장 전처럼 독점 체제를 이어갔다면 그 과실은 오픈씨 회사와 소수 투자자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블러의 성공은 수많은 유저와 커뮤니티 구성원이 과실을 나눠 갖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처럼 Web3 서비스는 단순히 유저를 끌어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분배 측면에서도 기존 업계와 전혀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3) Hyperliquid – 커뮤니티 분배의 끝판왕
Web3 생태계에서 커뮤니티 분배를 논할 때 하이퍼리퀴드는 빼놓을 수 없는 프로젝트다. 2024년부터 온체인 선물 거래소를 조용히 개발해 오던 하이퍼리퀴드는 모든 주문 집행을 온체인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경쟁력 있는 프로덕트와 높은 커뮤니티 토큰 분배율로 업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토큰 출시 이벤트 당시 커뮤니티에 30%를 할당했던 하이퍼리퀴드는 전체 토큰의 70%를 향후 커뮤니티에 분배하겠다고 발표하며 차원이 다른 계획을 밝혔다. 또한 외부 VC 투자를 받지 않았고, 팀과 재단 보유 물량의 상장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행보에 커뮤니티는 강하게 반응했다. 하이퍼리퀴드 토큰 HYPE 가격은 출시 후 한때 초기 대비 15배 가까이 상승하며 시가총액 약 $45B에 도달했다. 아직 배분되지 않은 커뮤니티 물량 40%의 가치만 해도 20조 원을 웃도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유저들은 이 막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더 활발히 서비스를 이용했고, 보상을 위한 사용이 서비스 성장을 낳고 다시 더 큰 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하이퍼리퀴드를 보며 프로덕트의 성능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점은 70%에 달하는 커뮤니티 분배 물량이었다. 파운더나 초기 투자자가 아닌 실제 사용자에게 지분의 70%를 할당하는 일은 Web2는 물론 Web3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었다. 참고로 비슷한 사업 모델의 로빈후드가 IPO 당시 전체 지분의 약 1~2%를 자사 리테일 고객에게 배정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미국 IPO에서 개인에게 가는 물량이 보통 1% 미만었기 때문이다. 만약 Web3에서 유저들에게 1~2%만 할당을 한다면?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커뮤니티로부터 외면 받고 유저를 유입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심지어 하이퍼리퀴드는 무려 70%를 사용자에게 무료로 돌리는 반면 로빈후드의 지분 배정은 개인이 돈을 내고 주식을 사는 구조다.) 만약 하이퍼리퀴드가 로빈후드처럼 주식과 크립토를 모두 지원 서비스 차별화가 줄어든다면 유저가 어느 서비스를 선택할지 자명하다. 어느 쪽이 부의 분배 관점에서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지도 분명하다.
이처럼 상위 0.1% 초부자들의 자산 대부분이 주식으로 이루어진 현실을 고려하면 Web3 문화는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역시 유저, 즉 커뮤니티 분배가 Web2 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Web3만의 무기이자 Web3 서비스 성공의 필수 요소라고 믿는다. 앞으로 더욱 심화될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역할도 이런 Web3 모델에서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지금 Web3 커뮤니티에서는 서비스를 쓰고 기여하면 당연히 토큰이나 지분 일부를 돌려받는 것을 기대한다. 머지않아 일반 대중도 “내가 쓰는 서비스라면 주식이나 토큰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이퍼리퀴드의 등장은 그러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유저가 바이낸스를 이용하면 그 부가 CZ를 비롯한 바이낸스 주주들에게 돌아가지만, 하이퍼리퀴드를 이용하면 그 부가 유저를 포함한 커뮤니티에 분배된다. 제공하는 가치가 동일하다면, 사람들이 바이낸스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4. 에어드롭은 Web3판 기본소득이다
AI가 결국 인간의 거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며, 그에 따라 기본소득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어느 방구석 전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AI 업계를 최전선에서 이끄는 샘 알트먼, 일론 머스크 같은 거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산업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AI로 인한 소득 불평등 심화를 우려하며 기본소득을 사회 안전망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렇게 미래에는 자본가와 기업가, 그리고 기본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대중으로 사회가 양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멀게만 느껴졌던 기본소득 개념이 Web3 세계에서는 이미 현실의 일부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크립토 강세장이 찾아오자 여러 코인 에어드롭과 야핑을 통해 소득원을 마련하여 생활비를 버는 전업 야퍼들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밋업에 참여하면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토큰을 받는 밋업 메타가 유행을 끌기도 했다. 일종의 Web3판 기본소득인 것이다. 이들은 주로 X(트위터)에서 활동하고 Web3 서비스를 사용하며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토큰을 에어드롭으로 받아 생활한다. 실제로 2025년 한 해에만 여러 프로젝트가 에어드롭으로 총 수조 원대 토큰을 유저들에게 분배했고, 이에 따라 전문적으로 에어드롭을 노리는 사용자층도 크게 늘어났다.
물론 지금까지의 에어드롭은 단점도 많았다. 프로젝트의 펀더멘탈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토큰을 남발해 커뮤니티에 뿌리면, 결국 토큰 가격이 급락했기에 일시적 현금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뒤늦게 트레이딩을 통해 유입된 투자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그 수익 일부를 토큰 바이백(자사 토큰 매입·소각)에 사용함으로써 토큰의 가치가 유지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하이퍼리퀴드는 발생한 프로토콜 수익의 99%를 HYPE 토큰 바이백에 투입하며 이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뒤이어 Ethena, 체인링크, Pump.Fun 등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매출이 발생하는 주요 Web3 프로젝트도 매출의 일정 부분을 토큰 매입·소각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통 주식회사가 자사주를 매입·소각하여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과 유사한 구조로, 토큰에도 점차 배당이나 수익 공유 개념이 도입되고 있는 셈이다. 즉, 에어드롭으로 받은 토큰이라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기본소득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트레이딩 위주의 코인 시장은 철저하게 소수의 상위 트레이더들이 부를 가져가는 구조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코인 투자에서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야핑과 에어드롭 시장은 초기 투자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고, 트레이딩 대비 상대적으로 하방이 막힌 플레이가 가능한 구조다. 트레이딩이 아닌 파밍과 야핑은 기본소득처럼 일반 유저들에게 추가 소득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5.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Web3 서비스는 기존 Web2 서비스들의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DEX(탈중앙화 거래소)는 올해 기존 중앙화 거래소와의 격차를 빠르게 줄여 나가고 있다. 탈중앙 파생상품 거래소인 하이퍼리퀴드 등을 포함해 DEX들의 전체 거래량은 이제 CEX 거래량의 약 18%까지 올라왔다(2024년 말 약 10.5%에서 크게 상승). 온체인 인프라 개선과 유동성 증가로 사용자 경험이 중앙화 거래소에 근접해감에 따라, 이 격차는 더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하이퍼리퀴드는 현재 전 세계 탈중앙 선물 거래의 70% 이상을 처리하며 분야 1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이낸스 등의 글로벌 거래량과 비교하면 10% 수준에 불과하여 성장 여력이 큰 부분도 있다. DEX와 NFT 마켓플레이스로 시작된 Web3 물결은 향후 다른 온라인 서비스 영역으로도 차츰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DEX나 NFT 분야 외에 Web2 서비스를 위협할 만한 Web3 서비스가 아직 드물다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Abstract, Sidekick, Cypher 등의 프로젝트는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페이먼트 등 컨슈머 앱 영역에서 Web3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이들 서비스 역시 유저 유입의 가장 큰 모티베이션은 인센티브다. 예컨대 Sidekick은 Web3 기반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LiveFi)으로, 시청자에게 토큰으로 팁이나 보상을 주는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별풍을 아무리 쏴도 주식 한 주 안주는 Web2 서비스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Cypher는 카드 사용자들에게 토큰을 에어드랍해주며, 기존 카드 서비스와 차원이 다른 보상을 제공했다.
아직은 Web2 서비스들 대비 갈 길은 멀지만, 소셜 플랫폼이나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등 Web2 시대 가장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서 Web3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재 유튜브 같은 Web2 플랫폼은 막대한 광고 수익과 구독료 중 일부만 극소수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나눌 뿐, 일반 시청자에게는 아무 보상도 없이 그들의 시간과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Blur, Hyperliquid에서 보았듯 Web3 철학을 도입한 동영상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기존 유튜브를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십 년간 사회를 뒤바꿀 또 하나의 기술 흐름인 AI의 발전도 역설적으로 Web3의 부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AI는 극단적 효율을 추구하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만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빅테크 기업은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고성능 GPU 칩 등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초거대 AI 모델은 이제 빅테크가 아니면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거대 플랫폼은 유저가 생성한 데이터를 아무런 보상 없이 가져다가 더 강력한 알고리즘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Web3 프로젝트도 싹트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사용자가 자신의 GPU 자원을 공유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분산형 GPU 네트워크, 사용자가 생성한 데이터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 수익화를 도모하는 퍼스널 데이터 마켓플레이스 등, AI 시대에 빅테크에 편중되는 부를 대중에게 돌려줄 Web3 서비스가 초기 단계이지만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업비트/빗썸에 상장된 오픈렛저도 데이터 기여에 따른 보상을 토크노믹스로 구조화한 프로젝트다.
물론 현재 Web3 서비스가 안고 있는 한계도 분명하다. Web3가 기존 Web2만큼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UX 전반의 개선이 더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하이퍼리퀴드처럼 높은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조차도 월간 활성 사용자는 아직 30만 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 업비트는 500만명 정도 된다.)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하이퍼리퀴드를 들어본 이는 극소수이며, 온체인 지갑 설치부터 CEX에서 USDC를 아비트럼 체인으로 송금하는 과정 자체가 일반 사용자에게는 여전히 큰 허들로 작용한다. 이러한 진입 장벽은 Web3가 대중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이 문제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개선되어 온 분야이며, 최근 로빈후드·페이팔·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들의 본격적인 진출로 사용자 경험은 한층 더 매끄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즉 매출이 발생하는 모델을 갖춘 프로젝트가 더 많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 이전보다는 분명 펀더멘탈의 중요성을 Web3 업계에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Market Making을 위시해 강세장에 가치가 부풀려지는 코인이 득세하고, 결국엔 가치 유지에 실패해 리테일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구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이퍼리퀴드, 에테나, 펌프펀 등 견실한 매출이 발생하고, 그 매출이 자체 토큰 매입과 소각으로 이어지는 가치 축적 모델이 더 많이 채택되고 시장에서 인정 받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도 과거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의 흑인들은 불과 60년 전만 해도 투표권조차 갖지 못했고, 오늘날 기업의 대표적 보상 수단인 스톡옵션 제도 역시 1960년대에 도입되어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반화되었다. 마찬가지로 Web3 서비스 사용과 커뮤니티 기여에 대한 대가로 토큰을 받는 문화는 업계 종사자와 Web3 커뮤니티에게는 이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외부의 눈으로는 여전히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Web3의 분배 문화는 빠르게 대중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유저들은 서비스 사용에 대한 대가를 토큰이라는 형태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지식과 권력을 민중에게 분산시켰던 것처럼, 자본 시장과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Web3가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고 더 많은 고품질 서비스들이 등장한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Web3의 분배 혜택을 누리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이 것이 내가 Web3의 대중화를 강하게 믿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