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빅 브라더
2. 전설의 탄생
3. 지난 날의 명과 암
3-1. Capitalism on Steroids
3-2. 크립토의 쓸모
4. 전화위복
5. 결론
1. 빅 브라더
“마침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 1984, 조지 오웰
인터넷이 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이다. 기술의 발전이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만 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는 빅 브라더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받는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크립토는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은 국가 권력, 거대 기업, 그리고 현대 금융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그 결과 비트코인이라는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 탄생하였다. 당시 크립토는 단순한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이 아니라, 현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사회, 문화, 정치적 운동의 일환이었다.
크립토 시장이 태동할 무렵, 수많은 인재들이 이 이상에 매료되어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들의 노력과 헌신이 오늘날 크립토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15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은 은의 시가총액을 넘어 새로운 자산 클래스로 자리 잡았으며, 국가의 법정화폐로 채택되거나 정치적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크립토는 이제 사이퍼펑크들의 전유물을 넘어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목적보다는 실용성과 효용성이 강조되고 있다. 일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일부는 크립토가 초기 사이퍼펑크 정신과 이념을 상실했다고 탄식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립토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시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2. 전설의 탄생
모든 것은 사이퍼펑크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이퍼펑크는 1980년대에 등장한 사이버펑크(cyberpunk) 장르에서 파생된 용어다. 사이버펑크는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로,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협하는 첨단 기술과 권력의 남용,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주 소재로 삼는다. 블레이드러너 (1982)와 트론 (1982)은 이러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초기 작품들로, 사이버펑크의 세계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 장르가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 (1984)가 출간된 이후였다. 뉴로맨서는 기술의 진보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미래 사회의 암울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후 AKIRA (1988), 공각기동대 (1995), 카우보이 비밥 (1998) 같은 작품들이 사이버펑크 문화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지면서, 이 장르는 단순한 허구가 아닌, 현실 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반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 도시의 네온사인 아래, 기술로 무장한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화려한 해킹과 전투의 장면들은 그저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기술의 힘을 독점하여 인류를 통제하려는 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은 사이버펑크와 사상적인 관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사이퍼펑크(cypherpunk)들도 기술이 통제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러나 사이버펑크가 문학 및 예술 장르로서 기술 발전의 사회적, 윤리적 함의를 탐구하는 데 그쳤다면, 사이퍼펑크는 현실 세계의 활동가로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중점을 둔다. 전자는 미래에 대한 허무주의적 또는 냉소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기술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묘사하지만, 후자는 기술에 대해 보다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답은 바로 암호화(cryptography)였다.
1970~80년대는 암호화 기술이 민간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였다. 그 중 휘필드 디피(Whitfield Diffie)와 마틴 헬만(Martin Hellman)이 1976년에 발표한 디피-헬만 키 교환(Diffie-Hellman Key Exchange) 알고리즘, 그리고 론 리베스트(Ron Rivest), 아디 샤미르(Adi Shamir), 레오나르드 애들먼(Leonard Adleman)이 1977년에 고안한 RSA (Rivest-Shamir-Adleman) 공개키 암호화 기술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정보 보안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
휘필드 디피(좌), 마틴 헬만(우)
론 리베스트(좌), 아디 샤미르(중), 레오나르드 애들먼(우)
1970년대 이전까지 암호화 기술은 국가 정부에서만 비밀리에 사용되던 기술이었다. 당시 암호화 기술은 대칭키 암호(symmetric-key algorithm) 시스템 기반이었는데, 이는 암호화와 복호화에 동일한 키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AES(Advanced Encryption Standard)와 같은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대칭키 암호화는 연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때 유리하지만, 암호화와 복호화 키가 동일하기 때문에 안전한 키 분배가 어렵고, 여러 사용자나 시스템 간에 각각 다른 키를 사용해야 하므로 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관리가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즉, 대칭키 시스템은 암호문 작성자와 수신자 모두 동일한 키를 사용해야 했기에 확장성이 떨어지며 오직 폐쇄된 집단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암호 시스템이었다.
출처: SSL2BUY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바로 공개키 암호화 시스템이다. 공개키 방식은 대칭키와 달리 공개 키(public key)와 개인 키(private key) 두 개의 키 쌍을 사용한다. 이 두 키는 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공개 키로 암호화된 데이터는 개인 키로만 복호화할 수 있는 구조다. 공개 키는 누구에게나 배포할 수 있어 제3자에게 키를 분배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고 추가적인 보안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사용자가 데이터를 서명하면 수신자는 공개키로 서명을 검증할 수 있어 데이터의 출처를 확인하고 변조 여부를 쉽게 검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록체인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ECDSA (Elliptic Curve Digital Signature Algorithm) 알고리즘도 공개키 암호화 시스템의 일종이다.
출처: SSL2BUY
다시 돌아와, 사이퍼펑크들은 이처럼 민간 산업에도 적용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암호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앙 권력을 분산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만들고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사이퍼펑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방된 사회에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려면 익명 거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익명 시스템은 개인이 원할 때만 그리고 원할 때만 자신의 신원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의 본질이다.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우리는 익명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과거의 기술은 강력한 프라이버시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전자 기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이퍼펑크는 코드를 작성한다.” - Eric Hughes, A Cypherpunk’s Manifesto (1993)
“우리는 현재 우리의 본질적인 자유가 보존될지 훼손될지 기로에 서 있다. 해방을 위한 가장 위대한 도구인 인터넷은 우리가 지금껏 본 가장 위험한 전체주의의 촉진자(facilitator of totalitarianism)로 변모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투쟁은 인터넷이 우리에게 권한을 부여할지 아니면 권한의 노예로 만들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확보하고 감시 국가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암호화는 대규모로 프라이버시를 강제할 수 있다. 암호화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줄 수 있는 기술이다.“ - Julian Assange, Cypherpunks: Freedom and the Future of the Internet (2012)
“컴퓨터 기술은 개인과 그룹이 완전히 익명으로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정부 규제의 성격, 경제적 상호작용을 통제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능력, 정보를 비밀로 유지하는 능력, 그리고 신뢰와 명성의 본질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국가는 당연히 이 기술의 확산을 늦추거나 막으려 할 것이다. 국가 안보 문제, 마약 밀매업자와 탈세자의 사용, 사회적 붕괴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삼을 것이다.” - Timothy C. May, Crypto Anarchists’ Manifesto (1988)
Eric Hughes(좌), Timothy C May(중), Julian Assange(우)
이러한 철학 아래 사이퍼펑크들은 코드를 작성하고, 실질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사이퍼펑크들의 끈질긴 집념은 결과적으로 암호화 기술의 도약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고안해낸 혁신적인 기술들은 현대 암호화 프로그램에 다방면으로 적용되었으며, 대표적인 업적들은 다음과 같다:
- PGP (Pretty Good Privacy): 개인이 인터넷에서 안전하게 소통하고 파일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이터 통신 암호화 및 인증 프로그램이다. 이는 이메일 암호화의 사실상 표준이 되었다.
- 리메일러(Remailer)와 믹스 네트워크(Mix Network): 익명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사용자의 실제 IP 주소를 숨겨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리메일러는 이메일을 익명으로 전송할 수 있게 해주고, 믹스 네트워크는 메시지의 경로를 무작위로 섞어 추적을 어렵게 한다.
- 익명 디지털 서명 기술: 디지털 서명은 문서의 진위와 무결성을 확인하는 데 사용된다. 익명 디지털 서명 기술은 사용자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도 디지털 서명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개인정보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SSL (Secure Socket Layer):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전송하기 위한 암호화 프로토콜이다. SSL은 웹 브라우저와 서버 간의 통신을 보호하며, 이를 통해 온라인 거래와 같은 민감한 정보의 전송을 안전하게 한다.
한편, 비트코인의 초기 프로토타입이라 불리는 암호화폐와 그 기술적 기반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는데, 먼저 저명한 암호학자이자 사이퍼펑크 운동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1989년, 블라인드 서명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거래 내역을 익명으로 유지할 수 있는 디지털 통화 시스템인 디지캐시(Digicash)를 발명했다. 디지캐시는 암호화 기술과 금융 거래를 접목한 최초의 시도로, 디지털 통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97년, 애덤 백(Adam Back)은 최초의 작업 증명 시스템에 기반한 해시캐시(Hashcash)를 제안했다. 해시캐시는 이메일 스팸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사용자가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일정한 계산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작업 증명 개념은 이후 할 피니(Hal Finney)가 개발한 재사용 가능한 작업 증명(RPOW, Reusable Proof of Work)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
1998년에는 위 다이(Wei Dai)가 B-money 백서를 발표했다. B-money는 최초로 블록체인의 핵심 개념인 분산 원장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전자화폐 시스템에 접목했다. 같은 시기, 닉 재보(Nick Szabo)는 비트코인의 전신으로 평가받는 비트골드(Bit Gold)를 제안했다. 비트골드는 작업 증명, 분산 원장, 블록의 타임 스탬핑, 합의 매커니즘, 이중 지불 방지 등 비트코인의 주요 개념들을 처음으로 통합한 시스템이었다. 다만, 비트골드는 실제 구현에 이르지는 못하고 개념적 제안에 머물렀다.
2004년, 할 피니는 비트코인의 탄생에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 재사용 가능한 작업 증명을 발표했다. 해시캐시의 작업 증명 시스템이 한 번 생성된 작업 증명 토큰을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구조였다면, RPOW는 이러한 토큰을 재사용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용자가 작업 증명 토큰을 생성하면, 서버는 이를 저장하고 추적하여 동일한 토큰을 다른 거래나 작업에 재사용할 수 있게 했다. 비록 RPOW는 중앙 서버를 기반으로 운영되었지만, 할 피니는 이를 통해 작업 증명 토큰이 보다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개념은 이후 비트코인에서 중앙 서버를 제거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완전히 분산된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좌측부터 Hal Finney, Nick Szabo, Adam Back, David Chaum
마침내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탄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한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비트코인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만, 앞선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트코인은 수많은 사이퍼펑크들이 오랜 시간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결집된 산물이다.
비트코인 백서 발췌, 출처: 비트코인 백서
뒷내용은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