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angle Dig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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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상자산 규제 현황과 한계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시 고려 사항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제언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매일경제신문과 Mblock은 지나온 10년을 돌아보고 가상자산 산업 발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제1회 MK가상자산 컨퍼런스'를 2023년 8월 23일 개최하였다. ‘국내 가상자산업 10년 및 업권법 원년, 진단과 대안'을 주제로 본 행사에는 업계 관계자, 감독 당국, 학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가상자산 제도권화 관련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수준 높은 논의를 진행하였다(Figure 2).
본 리포트는 컨퍼런스가 제공한 인사이트를 정리하는 MK 컨퍼런스 시리즈 세 번째 리포트로 이한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현 금융위원회 금융규제혁신회의 위원,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가 전달한 주제발표의 주요 포인트를 요약하고 이에 대한 당사의 의견을 공유한다. 발표 제목은 ‘우리 디지털자산 시장의 발전을 위한 법률적·정책적 제언'이며 가상자산 산업의 법제화 과정에서 필히 고려해야 할 주요 이슈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 리포트는 그 중에서도 국내 가상자산 규제 현황과 한계, 해외 사례와의 비교로 알아보는 가상자산 기본법 입법시 고려 사항, 그리고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제언의 세 가지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행사 강연의 발표자료는 코빗 리서치 홈페이지에 전문 공개되어있다.
가상자산 규제 현황과 한계
현재의 국내 가상자산 규율 체계는 어떻게 구축되었으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주제발표는 섹션 ‘우리나라의 가상자산 규제 현황’에서 국내 가상자산 규제 발전 과정과 한계를 다뤘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규율체계의 큰 축을 형성하는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과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른바 ‘디지털자산기본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금법 중심의 규율체제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
2017년 가상자산 시장 광풍 이후 규제의 필요성을 느낀 우리 정부는 행정지도와 입법과정을 병행하여 가상자산 산업의 규제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행정지도를 통해 ICO와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 및 사업 진출을 금지하고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인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제안을 반영하여 2001년 제정된 특금법을 2021년 개정하여 가상자산 거래소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규제를 도입하였다.
특금법은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조달 방지가 목표이며 이를 위해 자산 흐름의 추적을 의무화한다. 개정된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적용 범위,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의 발급 기준, 트래블룰 적용 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상자산의 정의와 가상자산사업자의 신고의무가 도입되었으며, 실명계정 발급 기준도 부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주제 발표는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방지를 목표로 하는 특금법은 가상자산 관련 “산업 진흥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한 규제에 관한 기본법 역할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평하였다. “가상자산에 관한 다른 행정작용법적 규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특금법을 “활용하여 이용자 보호, 금융 안정 등의 다른 행정목적을 달성하려는 경우에 여러 법률적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입출금 계정 발급은 여전히 은행의 자체 심사 결과를 따르기 때문에 자금세탁으로 인한 책임 부담이 있는 은행 입장에서는 실명계좌 발급에 극도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하였다*(Figure 3).
*특금법 상에 명시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에 대한 설명은 코빗 리서치 “국내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필요한 이유(2022.10.14)” 참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의의와 한계
2022년은 국내 가상자산 규율체계 설립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지난 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선거 공약이었던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위한 입법과정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시장에서는 테라-루나 사태와 FTX 거래소의 파산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며 투자자 보호의 시급함이 도마에 올랐다.
이에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의 긴급성을 고려하여 국제 기준이 확립되기까지 기다리는 대신, 국내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먼저 마련하고 이를 탄력적으로 보완하는 “점진적‧단계적 입법” 추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지난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제정되었다(Figure 4).
*금융위원회 보도자료(2023.06.30) “가상자산법 국회 본회의 통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점진적‧단계적 입법”의 첫번째 단계로, 주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당국의 제재, 권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주제 발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사업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독자적인] 규제체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하였다.
반면 한계점도 언급하였다. 가상자산 유통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규제하는 자본시장법을 참조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차용하였다. 이로 인한 한계점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일단 자본시장법의 불공정거래 행위의 규제에 비해 그 구성 요건이나 적용 대상을 훨씬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불확실성이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규제 적용 대상인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내부자거래 금지 조항(제10조 제1항)이 다루는 미공개중요정보의 범위나 시세조종 금지 조항(제10조 제2항)의 적용 대상 상품, 거래 장소가 현행 자본시장법과 다르며 명확하지 않다(Figure 5). 또한 자본시장법이 증권사에 요구하는 이용자재산보호제도를 차용하였기 때문에 가상자산 거래소의 예치금만을 규율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점으로 꼽았다. 이러한 이유로 발표자는 내년 법 시행 전까지 시행령 등을 통한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주제 발표는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하여 국내 가상자산 규율체계가 완결되기 위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 섹션에서는 이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과정에서 고려할 사항에 대해 알아본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시 고려 사항
‘디지털자산기본법'이란 가상자산업 발전과 건전한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인 규율체계이다. 앞서 언급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으로 기본법의 일부가 완성되었으며 총괄적인 법체계를 갖추기 위한 나머지 부분의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본법이 필히 담아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주제 발표의 세 번째 섹션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시 고려사항’에서는 주요 국가들의 가상자산 입법 동향을 참조한 후 국내 기본법 제정 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논하였다.
EU의 MiCA를 벤치마킹
주제 발표는 미국, 유럽,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의 가상자산 관련 입법 동향을 다루었다. 그 중 한국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가장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유럽연합의 MiCA(Markets in Crypto Assets)이다. MiCA는 전세계 주요 관할권 중 최초의 “가상자산에 관한 단독법안이자 가장 체계완결적”인 법규이다.
발표자는 “점진적‧단계적 입법” 원칙에 따라 지난 7월 승인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사실상 MiCA의 6항(시장남용행위 금지)과 7항(주요 감독당국의 권한 및 역할)에 해당된다고 하며 한국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상당부분 MiCA의 기본 틀을 따르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MiCA의 총 9개 조항 중 나머지 7개 조항에 해당하는 내용을 완료하는 것이 기본법의 남은 2단계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Figure 6).
기본법은 산업진흥과 관리감독 모두 필요
특정 산업의 기본법은 해당 산업이 운용되는 원칙을 선언하는, 일종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주제 발표는 일반적으로 기본법이 갖추어야할 규율 사항과 범위를 설명하였다. 한국에는 국세기본법, 소비자기본법 등 다양한 기본법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본법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거의 담지” 않는다. 대신 “해당 분야를 지배하는 기본원칙의 선언”이며 국가 기관의 “기본적 책무, 해당 정책의 추진 체계”와 “대체적 분쟁 해결 수단 등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기도” 한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 입법 과정은 ‘통제'나 ‘금지'에 편향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발표자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진정 ‘기본법’적 성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분산원장 기술에 기반한 가상자산 생태계의 건전한 조성 및 진흥을 위한 기본법적 사항과 함께, 금융 안정, 이용자 보호 등을 위한 관리감독 측면에서의 규제법적 사항”이 모두 담겨야 한다고 하였다(Figure 7).
기본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가상자산의 정의
주제 발표는 또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독자적으로 가상자산의 정의와 가상자산 사업자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현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특금법상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사업자의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현행 특금법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폭넓게 규정하면서 가상자산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예외로 열거하는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인 정의는 대부분의 유형의 가상자산을 특금법의 규제 아래 둘 수 있어 특금법의 목적인 자금세탁 방지에는 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특금법과는 다른 목적으로 제정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특금법 상 가상자산의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 중 증권으로 간주되는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분류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금융위원회 보도자료(2023.02.06) “토큰증권 발행 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를 참조.
**이혜정. (2022). 가상자산에 대한 민사집행 연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총서, 2022(12), 1-422; 권오훈. (2022).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현황 및 과제. 일감법학, 53, 3-21.
해외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EU의 MiCA는 ‘가상자산’을 “분산원장기술(DLT) 또는 이와 유사한 기술을 사용하여 디지털로 표시되는 가치 또는 권리”로 정의하고*, 가상자산을 전자화폐토큰, 자산준거토큰, 일반 암호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전자화폐토큰을 사용자 보호 측면에서, 자산준거토큰을 금융 안정성 측면에서 그외 가상자산과 분리하여 별도로 규제하고 각각 사용 목적에 최적화된 규제 방식을 적용한다(Figure 8). 이는 자산을 사용목적별로 분류하여 각각 그 목적에 부합하는 규제를 구축한 사례로서 한국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주제 발표는 “금융 안정, 이용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가상자산의 거래 목적, 기능, 구조 등을 고려해야 하며 따라서 MiCA와 같은 가상자산의 정확한 분류 작업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 ‘crypto-asset’ means a digital representation of a value or of a right that is able to be transferred and stored electronically using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or similar technology (MiCA §3.1(5))
현행법상 가상자산 유형화의 어려움
주제 발표는 나아가 가상자산을 둘러싼 다양한 법적 해석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슈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상자산의 “민사법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 법률체계에서는 민사법상의 물권과 채권의 구분이 재산권에 관한 다양한 법률적 문제에서 중요한 사안이 된다. 처분/이전, 담보권 설정, 손해배상 등의 상황에서 그 대상이 물권(物權)인지 채권(債權)*인지에 따라 절차와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권은 재산권의 한 형태로, 특정 물건에 대한 권리를 나타내며 소유권이 포함되는 개념인 반면, 채권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일정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가상자산은 분산원장기술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발표자는 한국 대법원이 과거 가상자산은 국내 “현행법상 물건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고 하였다(Figure 9).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상자산을 “계약에 따른 채권적 권리”로만 해석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일부 정형적 증권성이 높은 가상자산**을 제외한다면, 가상자산을 보유만 한다고 해서 채권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재산적 권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소유권의 객체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가상자산에 대한 소유권 성립 가능 여부”에 대한 별도의 입법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영국에서는 가상자산을 별도의 ‘데이터 객체'로 분류하여, 전통적인 재산법상 분류와 구분하면서도 그 재산성을 인정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가상자산 유형화 논의 시 참고할만한 사례라고 언급했다(Figure 10).
*김홍기. (2022). 가상화폐의 본질과 가상자산시장의 규제방안. 상사법연구, 41(1), 1-50.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에 대한 설명은 코빗 리서치 “STO 시리즈 2: 가상자산 증권성 평가 방법(2023.2.21)” 참조.
***이광수, 최익구 (2018). 법적 성질로 본 가상화폐의 개념과 문제점. 인권과 정의,(474), 1-12.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제언
국내 가상자산 산업은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이는 정책에 대한 질문이다. 법치국가에서는 정책이 법을 통해 실현됨을 고려하면 법규 제정에 앞서 정책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주제 발표는 이에 대한 제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본 섹션에서는 그 중 더욱 담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제안들을 몇 가지 선별하여 살펴본다.
선(先) 생태계, 후(後) 코인
주제 발표는 산업 육성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서 “분산원장 생태계의 탈중앙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할 것을 언급하였다. “건전한 생태계 육성이 핵심이지 결과물인 가상자산만 보아서는 규제 설계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가상자산은 “생태계 활동에 따른 보상으로서의 결과물”임을 인지하고 정책의 초점을 생태계 육성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Figure 11).
당사는 주제 연설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를 언급했다고 생각한다. 가상자산 산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현란한 자산 가격 움직임이 대중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상자산은 생태계의 원활한 작동에 기여하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보상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보상이 필요할까? 그 이유는 생태계가 지향하는 탈중앙화의 구현을 촉진하는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탈중앙화 생태계는 다르게 표현하면 뚜렷한 주인 없이 소유권이 분산되어 있는 생태계를 뜻한다. 그 반대 개념인 중앙화된 생태계는 운영 주체가 뚜렷하다. 따라서 생태계가 제공하는 효용을 누리기 위해 참여자가 증가하고 그로 인해 창출되는 가치는 운영 주체의 몫이다.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30%를 가져가는 애플이나 유튜브 등이 중앙화 생태계 운영 주체의 좋은 예다. 반면 탈중앙화 생태계는 애플이나 구글 같은 단일 운영 주체가 없다. 대신 운영에 필요한 기능들이 여러 참여자들에게 분산되어 있고 이에 기여하는 이들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가상자산이 그 보상 역할을 한다.
산업 육성 정책의 초점이 주인없는 생태계 조성에 맞춰지면 가상자산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구분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용자들이 운영주체가 뚜렷한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설령 운영주체가 없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있어도 기존의 규제 때문에 이를 현실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상자산 기술이 탈중앙화 생태계 형성을 지원하는 툴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이와 같은 케이스를 식별하여 더 효율적인 산업 육성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가치 창출은 분리가 아니고 융합에서
규제 당국은 금융업과 가상자산업의 분리를 과거 수년간 가상자산 관련 행정지도의 일환으로 유지해왔다. 주제 발표는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 생태계와의 상생”을 위해 이를 부분적으로라도 수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구체적으로 수탁업과 결제사업을 상생이 가능한 사례로 들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먼저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수탁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나 증권회사등이 “전자지갑의 보안키 보관·관리 외에 거래, 세금처리 등 부가서비스”를 포함한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전통 금융 기관들은 기존 금융 규율체계 틀 안에서 이용자 보호를 제공해온 경험이 있다. 이를 살려 자본시장법에 따른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여 “이용자 보호와 함께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유도”할 수 있다.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에 따라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을 고려하면 신규 사업자 진입 허용이 정당화된다고 하였다.
결제사업 또한 가상자산과의 큰 잠재적 시너지를 보유하고 있는 영역이다. 현재 국내 결제사업은 소비자와 가맹점 사이의 거래가 Payment Gateway(PG), Value Added Network(VAN), 신용카드 회사로 구성된 복잡한 지급결제망을 거쳐야 성사된다. 만일 가상자산 사업자와 결제사업자의 협업이 활성화되면 불필요한 중개인을 제거하고 그 혜택을 소비자와 가맹점 당사자들이 누릴 수 있다. 최근 비자(Visa)나 페이팔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결제 수단으로 도입한다는 발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PG, 신용카드사 등은 정부의 금융업과 가상자산업 분리 기조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제휴가 사실상 금지되는 상황”이다. 발표자는 이를 시정하면 많은 부가가치 창출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하였다(Figure 12).
당사는 이에 동의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가상자산 사업과 전통 금융업을 법규로 분리하고 있지 않으며 한국 특유의 구두 기반 ‘행정지도’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주의 금융감독청이 발급하는 수탁대행업 허가증(Trust Company Charter)을 보유하면 가상자산을 포함한 모든 금전적 가치가 있는 자산의 수탁대행업이 가능하다. Coinbase Custody, Fidelity Digital Asset, 그리고 전통 금융 기관인 BNY Mellon New York은 모두 수탁대행업 허가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 채권과 같은 전통 금융 자산은 물론 가상자산까지 수탁할 수 있다. 뉴욕주 규제당국이 중요시하는 것은 타인의 자산을 대행 관리하는데 필요한 내부 시스템이나 업무 처리 노하우이며 개별 자산의 특이성은 부수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단, 최근 SEC는 SAB 121같은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SAB는 Staff Accounting Board의 약자이며 상장회사에 적용되는 회계기준에 대한 SEC 의견의 수록집이다. 약 1년전 SEC는 SAB 121을 통해 은행이 가상자산을 보유할 경우 100% 자본비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여 기존 은행들의 가상자산 수탁사업 확장을 사실상 가로막는 조치를 취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SEC's Staff Accounting Bulletin No. 121를 참조.
블록체인 제도권화의 장애물, 외국환거래법
주제 발표는 마지막으로 가상자산과 외국환거래법에 대해 논하였다. 외국환거래법은 한화와 외국환을 거래하는 행위에 대한 전반의 기준을 정하는 법률이며 현행 외국환관리법은 1998년 9월 제정 공포되었다.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외국환관리법을 대체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당시 경험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주제 발표는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소규모 개방 경제를 전제한” 제도라고 묘사했다. “모든 외국환의 지급은 원인거래를 전제로 하여 외환당국이 그 흐름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 위에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경상거래(수출입거래, 용역거래 등)를 전제로 한 외국환거래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으나 자본거래(유가증권 거래, 자본의 대차 등)에 대해서는 거래 유형별로 신고 의무를 부과한다(외국환거래법 제18조). 그럼 가상자산 거래는 경상거래일까 자본거래일까? 발표자는 현재 규제당국은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고 하였다. “현행법이 국경 없는(borderless) 자산인 가상자산을 외국환 관련 규율체계에 제대로 포섭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가상자산과 관련한 외국환거래법의 정책적 입장을 명확화하고 필요시 규제 정비”가 필요한 이유라고 하였다(Figure 13).
당사는 이 부분이 본 주제발표에서 가장 담론화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가상자산 산업의 발목을 잡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외국환거래법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는 현재의 외국환거래법 하에서는 마찰없는 가치의 이동을 가치제안으로 삼는 블록체인 기술이 그 진가를 마음껏 발휘하기가 어렵다. 열린 가치전달 네트워크 상에서는 디지털 금(비트코인)뿐 아니라 미국달러(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오일(이더),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자산이 거래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의 이동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현재의 규율체계는 이러한 거래의 활성화를 장려하는 기능과 충돌이 발생하며 시정되지 않는다면 산업 전반을 고사시킨다. 이는 마치 정보 검열이 심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인터넷의 마찰없는 정보 전달 기능이 검열 때문에 그 진가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내 블록체인 기술 제도권화가 자본시장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불리한 이유에도 외국환거래법이 한 몫을 한다.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등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을 장려하여 금융 허브를 구축한 관할권의 정책 입안자들은 블록체인의 가치제안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금융 관련 정책 및 법률 체계가 자유로운 자산 이동에 최적화되어 있고 그러한 열린 금융체제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혜택을 오랜기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언급하면 금융 선진국에서는 거론되지도 않는 ‘부작용'부터 우려하는 국내 정책 기조와는 다르다.
고속도로에 과속 방지턱?
90년대 중반 ‘Information Superhighway(정보 수퍼고속도로)’라는 단어가 있었다. 중개인(마찰)없이 정보 전달이 가능한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때 이를 묘사한 표현이다. 정보 대신 가치를 중개인(마찰)없이 전달한다는 네트워크가 블록체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블록체인은 ‘Value Superhighway(가치 수퍼고속도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이동에 까다로운 제한을 두는 관할권 내에 블록체인을 금융 결제 인프라로 도입하는 것은 마치 고속도로를 깔아놓고 과속 방지턱이나 신호등 설치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Figure 14). 고속도로가 진가를 발휘하려면 그러한 제한(마찰)요소가 없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 자본 통제가 없거나 최소화된,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 하에서 블록체인은 법규체제와의 마찰없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주가지수를 운영하는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가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 시도를 10년 넘게 거절하고 있는 이유도 한국의 폐쇄적인 외환제도 때문이다(Figure 15). 최근 금융 당국이 외국인 투자자 등록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소 고무적이다. 하지만 향후 수년 내 가상자산 기술이 글로벌 금융체제에 불러올 변화를 예상하면 지금 한국의 개선 속도는 너무 느리다.
-> 'MK 컨퍼런스 시리즈 3: 산업 발전을 위한 법률·정책 제언' 원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