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근간, 커뮤니티에 대한 고찰

user-image
정석문
Head of Research/
Korbit
2023.05.15

[Xangle Digest]

※해당 컨텐츠는 5월 12일 외부에서 기발간 된 컨텐츠입니다. 컨텐츠에 대한 추가적인 주의사항은 본문 하단에서 확인해주세요.

 

 

목차 

블록체인의 조직 구조   
오픈소스 이해하기   
공공재로서의 블록체인
맺음말

 

 

 

 

 

“...the most important layer in blockchains is social consensus. Blockchains are a tool to allow 
communities of people to socially coordinate in a sovereign way.”

- Celestia, Modular Blockchain Network

 

가상자산 입문자가 어렵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이다. 시중의 블록체인 입문 자료는 엔지니어 관점에서 암호학과 프로토콜 작동 방식부터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블록 형성 과정과 합의 알고리즘, 퍼블릭 키와 프라이빗 키, 해시레이트나 스테이킹의 역할 등의 설명에 집중하는 자료는 많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상자산의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 결국에는 많은 입문자들은 친숙한 주식의 프레임을 적용하여 이해하려 하고 이는 더 큰 오해와 혼돈으로 이어진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작동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여자들과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본 리포트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자는 의도로 작성되었다. 가상자산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커뮤니티'라는 개념에 대해 역사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필수불가결한 오픈소스 개발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 가상자산의 등장으로 오픈소스 생태계에 도래한 변화에 대해 논한다. 가상자산 네트워크의 공공재적 성격에 대해서도 알아본 후 마지막으로 가상자산의 성패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인 커뮤니티에 달렸다는 점을 설명한다.  

블록체인의 조직 구조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논할때 자주 등장하는 ‘커뮤니티’는 어떤 집단일까? 저명한 투자자 찰리 멍거(Charlie Munger)는 “나에게 인센티브를 알려주면 결과를 예측해주겠다(Show me the incentive and I’ll show you the outcome)”라고 하였다. 블록체인의 커뮤니티란 어떻게 형성되며 이들은 어떤 인센티브에 의해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면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본질과 가치제안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커뮤니티’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집단 형태  

많은 가상자산 입문자들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주식의 틀을 적용하여 가상자산을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더와 해당 프로토콜 고유 자산(native asset)을 보유한 이들의 관계를 일종의 주식회사와 주주와의 관계로 오해한다. 이러한 오해는 특히 국내 프로젝트의 경우 어김없이 나타난다. 프로젝트 주도자가 특정 단일 업체이고 나머지 토큰 보유자들 대부분이 프로젝트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 단순히 시세차익만 노리는 free rider들로만 구성되면 이러한 관념은 더욱 고착된다.         

하지만 이것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시가총액 글로벌 상위 20개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성공 사례로 삼아 이들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20개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경우 목적 의식이 뚜렷한 커뮤니티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 커뮤니티란 공통된 관심사 혹은 목표를 가진 집단을 말한다. 전통적으로는 혈연 또는 지연 기반의 닫힌 공동체를 일컬었다. 인류 역사 초기에 형성된 커뮤니티의 공통된 목표는 구성원들의 생존이었다. 가족이 최소 단위의 커뮤니티였으며 이들이 모여 더 큰 커뮤니티인 부족을 형성하여 함께 농업 활동을 하고 여기서 얻은 수확을 공유하는 형태로 생존이라는 목적을 함께 달성하였다. 공통된 목표 달성을 위한 집결 행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활동 범위를 확대하여 중세 이후로는  다양한 형태를 갖춘 열린 공동체까지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유럽 중세의 길드(유럽 상인들의 협동조합), 한국의 계(稧), 아프리카의 수수(Susu)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집단의 특징은 집단이 생산하는 재화나 효용을 소비하는 주체가 곧 집단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Producer(생산자)와 Consumer(소비자)가 일치하는 ‘Prosumer‘ 조직인 것이다. 영어로 Co-operative, Collective, Common, Mutual, Union등으로 불리는 조직들이 이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조합(組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주식회사의 등장과 조합의 변화  

대항해시대를 맞은 유럽의 상인들은 무역업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 형태를 고안하였다. 기존의 조합은 집단의 효용을 소비하는 주체(소비자)가 곧 생산자였기 때문에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본 출처 또한 소비자로 제한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분리하는 조직 형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조직의 소유 지분을 소비자로부터 분리함으로써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소비자외 다른 일반 투자자에게서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본 효율성을 갖춘 조직 형태는 당시 시대적 요구에 크게 어필하였고 17세기에 등장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기점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태의 조직이 오늘날 우리가 ‘주식회사’로 부르는 일반적인 기업 조직 형태의 원조이다. 주식회사의 주식은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주요 선진국에서는 대중적이고 친숙한 자산으로 각인되었다.  

반면 기존의 조합 형태의 조직은 조합 구성원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작게는 지역 공동체를 위한 구민회관부터 크게는 특정 산업 생산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농협 또는 수협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알기쉬운 해외 사례로는 레알마드리드와 같은 스포츠 구단, 그리고 국제 송금 서비스 SWIFT 등이 있다.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는 집단(커뮤니티)들이 온라인상에서도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국경과 같은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형성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이 성행하였고 이는  오늘날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근간이 되었다. 다음 섹션에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과 블록체인 프로젝트와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본다. 

 

오픈소스 이해하기   

가상자산 산업을 논할 때 반드시 필요한 배경지식 중 하나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개념에 대한 이해이다. 오픈소스란 어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 필요한 소스 코드나 설계도를 누구나 접근해서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을 말하고 소스가 공개된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오픈소스는 비개발자 출신 가상자산 산업 참여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일 수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오픈소스보다는 기업의 리더십하에 성장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특성, 그리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는 개발자 수가 해외에 비해 많이 저조한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는 더욱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Figure 3).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 제안과 발전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금융권, 정치권, 법조계 등 비개발자 인력의 참여가 향후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본 섹션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 과정을 간략히 짚어보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 왜 가상자산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인지 살펴본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오픈소스가 원조

컴퓨터 산업의 근간은 학계 중심으로 다져졌다. 1950~60년대 주요 미국 대학 연구실들은 IBM과 같은 대기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컴퓨터 기술을 연구 개발하였고 이러한 과정은 학계의 전통이자 관행을 따라 서로 공유하고 협업하는 공개된 절차를 따랐다. 이 시기에는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구분하기보다는 하드웨어 작동에 필요한 하나의 부품 정도로 인식하였다. 또한 같은 소프트웨어를 서로 다른 규격의 하드웨어에서도 사용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각자의 하드웨어 규격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와 머신코드를 함께 공유하였다. 사용자가 자유롭게 수정이 가능한 형태의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패키지로서 함께 판매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이다.

그 흔적은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많은 대학 전산과 연구실들은 정책적으로 공개된 소스 코드가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IBM 컴퓨터 사용자들의 모임인 SHARE는 초창기 메인프레임 컴퓨터인 IBM 700과 7090용 운영체제 SHARE Operating System을 출시하고 보급하여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고 수정 및 개선할 수 있는 오픈소스 운영체제 프로그램으로서의 중요한 첫 사례를 만들었다. 훗날 인터넷의 모태가 된 알파넷(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ARPANET)이 1969년 처음 등장했을 당시 주 사용처는 다양한 연구기관 소속의 연구원들끼리 소프트웨어 코드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초창기 컴퓨터 공학자들 사이의 자발적인 협조 및 공유의 문화는 컴퓨터 산업 성장의 기반을 닦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서로 공유하고 협업하는 오픈소스 문화가 뿌리내리는데 기여하였다.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의 등장과 오픈소스의 반격     

1970년대부터 이러한 관행에 변화가 찾아왔다. 대기업 또는 연구기관 등으로 구성되었던 당시 컴퓨터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하나의 패키지로 판매되는 가격 구조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점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하는 ‘언번들링(unbundling)’이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업체들은 사업 시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저작권 보호를 받아야 할 자산이라 주장하였으며 결국 이를 법률화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규율 체제에 힘입어 소프트웨어 산업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라이센싱 산업으로서의 위치를 1980년대부터 확고히 하였고 이후 기업의 테두리 안에서 폐쇄적으로 진행되는 클로즈드소스(closed-source) 형태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널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베테랑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중 일부는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오픈소스의 전통을 이어갈 것을 호소하였다.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으로 대표되는 오픈소스 개발 지지자들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분석하고 수정할 수 있는 형태로 보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운동’을 벌였으며, 재단 설립과 법률 개정 등을 통해 오픈소스 개발이 지속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개발자들 사이에 호응을 얻으며 성장하였고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중 평균 80% 정도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성과로는 리눅스와 안드로이드를 들 수 있다.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주도하여 개발된 리눅스는 현재 역사상 가장 많은 참여자가 관여하고 있는 오픈소스 운영체제이며 안드로이드는 이 리눅스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마트폰 모바일 운영체제이다(Figure 4, 5). 이처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기업이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때로는 협업하고 때로는 건전한 자극을 주며 함께 성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