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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gis Ventures
Research Team/
Aegis Ventures
2023.04.28

[Xangle Digest]

※해당 컨텐츠는 4월 19일 외부에서 기발간 된 컨텐츠입니다. 컨텐츠에 대한 추가적인 주의사항은 본문 하단에서 확인해주세요.

 

 

 

 

Summary

“화폐”는 사료상 처음 정의된 고대 이후 사회 시스템 내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처음 등장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교환의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의 저장”, “가치의 단위”의 수단에 불과하였으나, 이후 중세 후기에 접어들며 다양한 파생 금융상품들을 낳게 되었다.

국가가 규모성을 가짐에 따라 거래에 사용되었던 화폐는 “국가라는 추상적인 기구의 영향력”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고, 중상주의자들과 중농주의자들의 등장에 따라 “구매력”을 징표하는 수단으로 기능이 변화된다.

국가라는 공동체 단위가 더욱 확대되고 행정시스템이 도입됨에 따라 화폐는 국가의 자원을 재분배하는 기능을 부여 받게되며, 본격적으로 경제 정책 중 통화정책이라 일컬어지는 한 축으로 성립된다.

본고에서는 화폐의 변천에 대해서 서술한 뒤, 단순 거래의 수단 혹은 정책의 수단으로의 화폐가 아닌 제도나 사회 규범으로 화폐의 사용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를 바탕으로 Digital Asset의 정의 혹은 방향에 대해서 논해보기로 한다. 

 

1. 서론

화폐는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현대인은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을 먹는 과정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지 않고 Subway 같은 음식점에 방문하여 화폐를 지급하고 음식을 “구매하여” 먹는다. 온라인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구매를 하고,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카드 결제(신용)등의 방법을 통하여 화폐(혹은 “등가물”)를 지급한다.

화폐를 통한 상인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받는 일련의 거래들을 오늘날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아프리카의 오지나 혹은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런 행동양태는 당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거래, 뿐만 아니라 물건의 교환 수준도 일상적으로 발생하지 않았고, 농사를 지어 끼니를 이어가거나 뒷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나물을 캐어 생활을 영위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이웃간 증여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렇게 상인적 행위가 보편적이게 된 현대 사회를 민(民)이 상화(商貨)[1]된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양태는 단순히 거래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기대 가능한 수준의 디플레이션(화폐가격 절하)의 기대 아래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기회비용을 계산하며, 평생소득을 근거로 연금/보험 상품들에 가입한다. 심지어 혹자들은 별도의 사업자등록이나 사업장 개설 없이 상품에 대한 파생상품들을 거래하며 고위험의 투자수익을 기대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이제 단순 생산자이지도 않고, 노동자이지도 않으며 작은 자본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번 레포트에서는 위의 거래를 있게 만든 “화폐”라는 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통상적인 교과서에서는 교환경제의 발전을 거래라는 양태에 주목하여 “물물교환 → 상품화폐 → 금속화폐 → 전자화폐” 등의 순서로 서술하고, 발전한 양상의 원인을 인간에게 교환의 본성이 있고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에서 각 개인이 정보비용과 보관비용(통칭 “불편”)의 감소를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화폐는 이론적으로 무차별하고(그 자체의 가치는 0원이다.) 완전 대체가능하다. (현대 경제학) 하지만, 거래비용의 감소가 모두가 추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한다면 부도 위험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지급결제수단이나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 혹은 어음을 사용하는 일련의 행태를 설명하기에는 세련된 설명은 아니다.

따라서 본 레포트에서는 “경제학설사”의 관점에서 화폐에 대한 관점의 변화 양상을 서술해보고 이를 근거로, 기존 화폐의 기능이라고 서술된 가치의 저장, 가치의 단위, 교환의 매개 외에 다른 기능의 가능성을 검토하여 2010년대 이슈가 되는 Digital Asset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2. 경제사상사 관점

경제사상사 관점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19세기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화폐라고 하는 것은 단순 “교환”이나 “저장”이라는 수단에서 벗어나 국부를 축적하거나 혹은 축적된 국부를 분배하는 도구로 변화한다. 근대 중앙집권국가에 이르러 이는 국부(National Wealth)의 축적을 논하는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대립과 연결되며 화폐와 생산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애덤 스미스 이후 리카르도와 칼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화폐는 수단이거나 수단조차 되지 못하는 대안으로 기능하게 된다. 케인즈에 이르러 화폐는 중앙은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대부시장의 주요 자금원천이 되고 통화주의자들을 거치면서 사회의 한 축인 경제시스템을 관리 통제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경제학설사 파트에서는 화폐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과 파생된 주장들을 다룰 것이다. 사회라는 시스템 내에서 단순한 기능을 하던 화폐가, 17~18에 들어 통제 관리하는 수준에 이르고 규범에 이르기 까지를 그 대상으로 한다.

3.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화폐에 대한 가장 오래된 논의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인 『Politic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철학자이다. 해당 저서를 집필하던 당시 그리스는 폴리스 중심의 도시국가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도리아 인이 남하하면서 스파르타와 코린토스 등을 건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리아 인은 그리스 지역의 주요 곡창지대를 점거하며, 기존의 아테네 등으로 하여금 해양무역에 기반한 상업 도시로 변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이후 솔론의 도량형 은화 도입을 거치면서 아테네의 해상 교역량은 급증하게 되고 금권정치 문제가 대두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에 대한 논의의 배경이다.

『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2}: BookⅤ Chapter. Ⅷ

(Why money) And money has come to be, by general agreement, a representative of Demand: and the account of its Greek name νομισμα is this, that it is what it is not naturally but by custom or law (νόμος), and it rests with us to change its value, or make it wholly useless.

(가치의 저장) And further, money is a kind of security to us in respect of exchange at some future time …

(교환의 매개) the theory of money being that whenever one brings it one can receive commodities in exchange …

(가치의 척도) So money, like a measure, making all things commensurable equalises them.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화폐를 다루는 이유는 “교환의 정의”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 때문이다. 그는 교환의 정의의 수단으로 화폐(Money)를 다룬다. 그는 본서에서 “자발적인” 균등한 분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분배가 비례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배의 수단으로 화폐(Money, νομισμα)를 제시하며 이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규범이나 법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라 정의한다. 이것이 오늘날 화폐의 기능으로 정의하는 1) 교환의 매개이자 2) 가치의 척도 그리고 3) 가치의 저장의 기원(Origin)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화폐에서 파생되는 “이자(interest)”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화폐는 생명체가 아니므로 본래적으로 불임임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대금업종과 같은 종류는 자연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권장되어서는 안된다는 화폐불임설(doctrine of the sterility of money)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의 관점으로 기독교를 해석한 아우구스티누스 등 초기 기독교 당시에는 약하게 드러났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토마스 아퀴나스 등과 같은 후기 기독교부터는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받아들인 이슬람교의 경우 오늘날까지 이자를 금지하고 후원으로 이자의 지급 방식을 우회하고 있다.

 

4. 중세후기: 토마스 아퀴나스, 루이스 드 몰리나

중세 시기에는 화폐에 대한 관점에서 유력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교리관점에서 이자 수취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부철학이 자리잡고 초기 왕정의 형태가 갖추어지는 14세기경, 흑사병과 백년전쟁의 과정에서 상업행위에 대한 일부 용인을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공익적 목적의 이자”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아퀴나스는 관련된 문헌으로 그의 신학대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The summa Theologica』[3]: Question 78 OF THE SIN OF USURY

On the other hand, there are things the use of which does not consist in their consumption: thus to use a house is to dwell in it, not to destroy it. Wherefore in such things both may be granted: for instance, one man may hand over to another the ownership of his house while reserving to himself the use of it for a time, or vice versa, he may grant the use of the house, while retaining the ownership. For this reason a man may lawfully make a charge for the use of his house, and, besides this, revendicate the house from the person to whom he has granted its use, as happens in renting and letting a house.

 

신학대전에서 아퀴나스는 소비목적의 경우 이자를 받는 것은 불가하나, 공익적 목적의 투자는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당시 은행업 및 대부업의 공식적인 업무 가능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루이스 드 몰리나 (Luis de Molina)

『Tratado sobre los cambios』[4]

Quare magis videntur pecuniam precario mutuo accipere, reddituri quotiscumque exigetur a deponent.123 Communiter tamen, pecunia illa interim negotiantur, et lucrantur, sine ad cambium dando, sine aliud negotiationis genus exercendo.

 

아퀴나스까지 제한되어 있던 “소비임치”에 대한 해석은 몰리나에 들어 더욱 완화되었다. 특히 몰리나와 당시 경제학자 루고(Lugo Hispalensis)의 은행업에 대한 주의의무를 완화할 수 있다는 해석은 후기 중세 은행업 활성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완화된 규범 아래 은행업 등은 더욱 활발하게 투자를 하며 단기적인 화폐 공급량을 증가시킨다.

 

5. 중상주의 VS 중농주의 (16세기~17세기)

100년 전쟁이 종료된 직후 15세기 유럽사회는 본격적으로 중세 봉건사회에서 군주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초기 군주제의 형태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대규모 군사 동원 등을 위해서 안정적인 화폐(Money)의 비축이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공감대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초기 상비군 조직과 이를 관리하는 관료 조직이 등장함에 따라 행정조직의 경비 충당을 위한 세제와 국부의 개념이 논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기존의 봉건제의 왕은 봉건제후들을 단순히 “소집”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화폐로 지불하는 방식이었다면, 군주정 아래서의 군사와 행정조직은 상시 “급료”를 지불해야 하는 직접 고용 방식으로 전환되게 된다. 해당 시기에 들어 화폐는 단순히 거래의 수단에서 벗어나 국가의 힘과 직결되는 군비경쟁 역시 발생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국부(National Wealth)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적인 맥락에서 처음 다뤄지기 시작한다.

이에 관한 학파는 크게 두개로 대변된다. 하나는 중상주의(mercantilism)이고 다른 하나는 중농주의(physiocracy)이다. 중상주의는 풍부한 귀금속(Money)의 보유가 구매 가능한 재화의 양을 증가시켜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관점으로 영국을 중심으로 주장되었다. 그에 반해 중농주의는 귀금속이 아닌 생산성(Productivity)이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관점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주장이다.

중상주의: 토머스 먼, 존 로우, 맨더빌, 흄

중상주의의 핵심 테제는 귀금속을 함유한 “금속화폐”에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그들은 현실에 직면한 기근, 불황 등의 문제의 원인을 “화폐”에서 찾고, 화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수행한 자들을 말한다.

15세기 백년전쟁이 종결되고, 여러 차례 정복전쟁을 통해 중앙집권화의 기틀을 마련한 영국은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사치재 및 귀금속 등이 아프리카 내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영국에 가격혁명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제사 관점에서는 해당 시기를 거치면서 인구의 폭증, 임계점에 도달한 부양인구로 인해 기근 기아 등을 겪게 된다. 일례로 해당 시기 영국의 인구는 두배 가까이 증가하였고, 도시 거주 인구는 약 5배 가까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관점은 화폐와 별론으로 맬서스와 같은 인구 경제학자들의 등장을 이끈다.

14세기 흑사병의 결과 대폭 감소한 인구대비 증가이기에 오히려 단위 인구의 실질 소득은 증가하였다. 생활 여건은 개선되었으나, 급격하게 상승하는 물가로 인해 자본의 재분배 현상은 빠르게 발생했다. 특히 빠른 자본 재분배는 인클로저 운동과 연결되며 신규 산업들을 촉진하며 산업혁명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동시에 높은 물가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성은 높아진다. 이는 17세기의 영국 정치의 불안정성과 연결된다.

토마스 먼 (Sir Thomas Mun)

토마스 먼은 16세기 출생 상인으로 동인도 회사의 이사로 재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화폐가치 하락의 원인을 무역의 불균형에서 찾는다. 그는 동인도 회사의 성과를 관리하며 인도에 상당한 수량의 은화가 유출되고 對인도 무역수지 적자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이것이 영국 내의 은화의 희소성을 증가시켜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본 주장은 의회에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1620년대 “무역차액설”을 주장하며, 이는 이후 보호무역주의를 통한 귀금속 화폐의 증가와 이어지게 된다.

『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5]: Chapter II The means to enrich this Kingdom & to increase our Treasure

The ordinary means…to increase our wealth and treasure is by Forraign Trade, wherein wee must ever observe this rule; to sell more to strangers yearly than wee consume of theirs in value. …[T]hat part of our stock which is not returned to us in wares must necessarily be brought home in treasure.

 

그는 그의 저작인 『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에서 상시 양의 무역수지(favorable balance of trade)가 발생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화폐를 통한 국부를 쌓아야 영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지동설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수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국가 내 부존되어있는 귀금속의 총규모가 아닌 거래수단인 화폐에 포함된 귀금속의 함량에 대해 주목한다. 중세시대부터 이루어져오던 주화변조(Debasement)를 노린 금속함량을 줄인 화폐 주조에 관련하여, 금속화폐에 금/은/동의 함량을 감소시키는 것이 실질적인 통화량 증가(M↑)을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한다.

『Monetae cudendae ratio』 (1526)

Money loses its value most of all through excessive abundance, if so much silver is coined as to heighten people’s desire for silver bullion more than for coined money. For in this way the coinage’s market value vanishes when with it. it is not possible to buy as much silver as the money itself contains and is found a greater advantage in destroying the coin by melting the silver. The solution is to mint no more coinage until it recovers its par value and becomes more desirable than silver.

 

그의 저서 Monetae cudendae ratio에서 보면, 그는 서로 다른 함량을 가진 은화/금화 등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그는 적은 함량을 가진 주화의 발행이 아비트라지를 발생시켜 금속 함량이 높은 화폐를 그레샴의 법칙에 따라 구축하면서 금속화폐의 총 유통량을 증가시키고, 증가된 화폐 유통량은 물가를 인상시킨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흄 (David Hume)

경험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흄은 애덤 스미스가 정치/윤리학 교사였다는 점과 비슷한 맥락에서 화폐에 관한 연구기록을 남긴다. 흄의 관점은 무조건적으로 금의 지속적인 유입이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토마스 먼의 관점과 다르다. 토마스 먼이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말한다면, 흄은 증분 화폐량과 물가는 연관성이 있고 과도한 금속화폐의 유입은 물가의 상승과 이어져 오히려 후생의 악화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Of the Balance of Trade』 p.4[6]

These render paper equivalent to money, circulate it throughout the whole state, make it supply the place of gold and silver, raise proportionably the price of labour and commodities, and by that means either banish a great part of those precious metals, or prevent their farther encrease. What can be more shortsighted than our reasonings on this head? We fancy, because an individual would be much richer, were his stock of money doubled, that the same good effect would follow were the money of every one encreased; not considering, that this would raise as much the price of every commodity, and reduce every man, in time, to the same condition as before. It is only in our public negociations and transactions with foreigners, that a greater stock of money is advantageous; and as our paper is there absolutely insignificant, we feel, by its means, all the ill effects arising from a great abundance of money, without reaping any of the advantages.

 

데이비드 흄은 무역수지에 관련하여 가격 정화 이동 메커니즘(price-specie flow mechanism)을 주장한다. 가격 정화 이동 메커니즘이란 단기적인 화폐의 급격한 증가는 일시적으로 이용자들의 후생수준을 증가시키나, 이후 교역과정에서 일부 상쇄가 되며 기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수준에서 새로운 균형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는 상승된 물가 상당의 추가 통화의 필요로 이어질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그는 물가의 관리를 위해 적절한 수준의 금속화폐 유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후 비판에서 흄은 단순 통화량 관리를 넘어서, 점진적인 금속화폐 증가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 역시 추가적으로 긍정한다.

 

존 로우 (John Law)

앞서 금속화폐에 대해서 다뤘던 중상주의자들과 다르게 존 로우는 추상적으로 존재하였던 명목화폐 관련 담론을 실현한다. 초기 중앙은행 시스템에 비해 미시시피 회사로 잘 알려진 존 로우는 은행권의 증서시스템을 받아들여 지급결제시스템을 금속화폐에서 실물 담보부 명목화폐로의 초기 전환을 이끌어낸 자이다.

『Money and Trade Considered With a Proposal for Supplying the Nation with Money』(1705)[7], Chapter7: The Proposal

The other Qualities necessary in Money, Are,

1.Easy of Delivery

2.Of the same Value in one place to what it is in another.

3.To be kept without Loss or Expense.

4.To be divided without loss.

5.To be capable of a Stamp.

Paper Money has these Qualities in a greater degree than Silver.

1.It is easier of Delivery: 500 lib. in Paper may be payed in less time, than 5 lib. in Silver.

2.It is nearer the value in one place to what it is in another, being of easier carriage.

3.It can be easier kept; taking up less room. And without loss: Because it may be Exchanged at the Office. The Consumption of Paper is not of so much value as the Consumption of Silver: The Consumption of the Paper is a loss to the Office, the Consumption of Silver is a loss to the Owner.

4.It can be divided without loss: Because it may be changed for lesser Notes at the Office.

5.It is capable of a Stamp, and less liable to be Counterfeit.

The Practice of most Trading Nations confirms, that Paper is more Qualified for the Use of Money, than Silver; providing it have a Value. In Holland Silver is pledg’d, and Paper is used as Money. That Land pledg’d is a better Value than Silver pledg’d,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In England, before the Bank was set up, Gold- smiths Notes were received in Payments preferable to Gold or Silver: Which shows that Paper Money had all the Qualities necessary in Money, so much more than Gold or Silver, as to equal the Danger of a Gold- smiths breaking, or which there were many Examples. Mr. Lock, pag. 7th on Interest of Money, says, that one Gold-smith’s Credit (being usually a Note under one of his Servants Hands) went for above Eleven hundred thousand Pounds at a time.

 

그는 통화량 조절, 운송, 차익거래 등의 금속화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설명한다. 그는 이를 근거로 하여 당시 금속화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를 담보로 하는 증서를 발행하여 지폐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친구를 살해했다는 범죄혐의로 인해 프랑스로 옮겨 가게 된다. 프랑스에서 그는 “뱅크 제네럴(Banque générale)”이라는 은행을 설립한 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체 증서를 발행한다. 뱅크 제네럴의 증서는 이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조세의 독점적인 징수 수단으로 인정받고 이를 통해 자체 증서의 유동성을 확대시킨다. 성공적으로 증서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거두게 된다. 이는 리브르와 준하는 신용도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는 기존의 어떤 금속화폐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화폐량을 조절할 수 있는(달리 말해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중앙은행[8]의 원시적 모델과 준한다.

 

중농주의: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

중상주의가 금속화폐를 통한 문제해결에 집중하였다고 한다면 중농주의자들의 생각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생산성에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그들에게 있어 화폐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교역의 대상이 되는 생산성의 강화였다.

프랑수아 케네에 앞서 프랑스의 국부를 담당하고 있었던 자는 장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였다. 콜베르는 전형적인 중상주의자로 국내의 곡물은 관세를 통해 통제하되(혹은 지주의 이익은 보호하되) 수출품 수출을 장려하여 국부를 쌓아 행정의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런 곡물가격 통제는 비옥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정에는 맞지 않았다. 낮은 곡물의 가격은 토지개발의 유인을 낮췄고 오히려 프랑스의 관점에서는 생산성이 둔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Philosophie rurale ou économie générale et politique de l’ agriculture VII, François Quesnay,

 

프랑수아 케네는 외과의사 출신으로, 경제를 마치 인간의 신체와 같이 비유한다. 토지가 가장 근본이며, 이에 투입되는 노동력, 장신구는 투입되는 생산 수단으로 취급한다.

 

6. 고전학파 이후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국부의 증진을 위한 여러 논의들은 어떤 것은 실현되기도 하였고, 실현되지 못하기도 하였다. 해당 과정에서 유럽의 각 국가들은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영국은 2차례에 걸친 인클로저 운동, 지방에서 공업도시로 빠른 속도의 인구 이동이 발생하여 이 과정 중 산업화로 인한 빈민계층의 증가 등으로 인해 문제를 겪게 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당시 영국교회 및 지방 영주들은 스피넘랜드 법(다른 명칭으로 구빈법) 제정 등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나, 이를 통해 열악한 상태로 전락한 빈민계층의 후생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랑스는 존 로의 실험 이후 충격적인 재정적자에 빠지게 되며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되고, 부르주아(자본가 계급)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정으로의 변화를 야기한다.

7. 애덤 스미스(Adam Smith)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정치철학자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저술하였다. 그의 이론은 중농주의자의 관점과 중상주의자의 관점 둘을 종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방침에 대한 제언으로 이어진다.

국부론은 구조적으로 기술된 경제이론서로 분업, 교환과 화폐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자본의 축적 그리고 이를 통한 국가재정의 운영까지 이르기까지 다룬다. 그의 저서에서 특이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환의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방식으로 단순히 화폐만을 이용하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인 “가치”를 제안한다는 점이다.

국부론의 초입 부분에서 그는 화폐와 “교환가치”, “사용가치” 등을 정의한다. 그는 교환행위의 당위성[9]을 설명하면서 “분별력 있는 자”라고 한다면 모두 자신이 필요한 것을 가지기 위해 교환의 행위를 수행한다고 가정한다. 특히 해당 맥락에서 그는 오늘날 제안되는 전형적인 “유물론적인 접근”을 시도하는데, 그리스의 교환사례를 예로 들며 초기에는 “교환의 본성”을 달성하기 위해 물물교환을 이용하였으나, 해당 방식이 교환이나 보관에 적절하지 않으므로 금속기반 화폐가 등장하였음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품이나 재화의 가치개념을 제안함에 있어 두개의 가치체계를 제안한다. 하나는 화폐환산금액인 교환가치(Value in exchange)로 시장에서 거래과정 중 드러나는 가치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교환가치의 개념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투입노동력 기반으로 산출되는 사용가치이다.

 

The word Value, it is to be observed, has two different meanings, and sometimes expresses the utility of some particular object, and sometimes the power of purchasing other goods which the possession of that object conveys. The one may be called ‘value in use’ the other ‘value in exchange.’ The things which have the greatest value in use have frequently little or no value in exchange; and on the contrary, those which have the greatest value in exchange have frequently little or no value in use. Nothing is more useful than water: but it will purchase scarce any things; scarce any things can be had in exchange for it. A diamond, on the contrary, has scarce any value in use; but a very great quantity of other goods may frequently be had in exchange for it.

애덤 스미스의 사용가치 개념은 중상주의자의 견해와 유사하다. 교환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되어서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사용가치라 함은 노동력으로 환산되고, 해당 과정에서 산출된 산출물들은 노동력을 기반으로 상호 교환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화폐 기반 시장 개념에서 생산성 기반 시장 개념을 분리하는 시도이다.

전단부에서 정의된 가치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국부론의 중후반부에는 생산물이 자본으로 축적되고, 사회 상규상 사용되고 있던 이자율의 개념 등 거시적인 관점(혹은 지표)들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런 애덤 스미스의 관점은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마르크스, 케인즈 및 통화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8.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케인즈는 19 ~ 20세기의 경제학자로 본디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후대에 경제학으로 그 분야를 확장시킨 사람이다. 그가 살던 19세기는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의 결과 경영학에서 다루는 프레데릭 테일러와 헨리 포드가 등장하여 공장제 기계공업의 등장에 따라 생산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기이다. 특히 1914년 발생한 세계 1차 세계대전의 결과 황폐화되었던 유럽을 주 소비시장으로 했던 미국의 성장은 괄목했다. 이 과정에서 증가한 소득과 그에 따른 팽창된 수요는 이후 금융경색과 더불어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일으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생산능력이 제한되어 있었던 시절의 장바티스트 세이가 말했던 공급이 수요를 견인한다는 주장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인류 역사상 몇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케인즈가 직면한 문제는 급격하게 팽창한 공급 대비 수요의 수준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수요의 감소에 따라 생산량을 줄이고 생산업체가 도산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실업이 발생하여 연쇄적인 음의 사이클을 만들고 있었다. 케인즈의 화폐이론은 이러한 시대상을 다루고 있다.

케인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와 고용의 회복에 대한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완전고용이라고 표현하는 자동조절기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케인즈의 이론이 독특한 점은 애덤 스미스 이후 등장한 중장기 프로젝션에 대비하여 단기적 프로젝션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은 케인즈는 대표 저작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의 서문에서 드러난다.

 

내가 나의 『화폐론』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는 아직도 화폐의 영향을 수요와 공급의 일반원리와는 별개인 그 무엇인가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집필을 마쳤을 때, 나는 화폐론을 경제전체로서의 산출이론 일부가 되도록 돌이키는데 약간의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내가 고정관념에서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략) 가 산출수준의 변화의 영향을 완전히 다루는데 실패하였다는 사실에 잘 드러난다. (중략) 그러나 순간적 묘사와는 다른 것으로서 동태적 과정은 불완전하고 극히 혼란스러운 채로 남게 되었다. 반면에 이 책은 주로 전체적인 산출량과 고용 규모의 변화를 결정하는 재력에 대한 연구로 전개되었으며, 화폐가 본질적이고 특별한 방식으로 경제체계에 도입되는 점이 보이기는 (후략)

케인즈는 일반이론 아래서 통화정책의 구체적인 제안을 시도한다. 거시적인 맥락에서의 화폐의 발행량과 이자율 등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이는 점진적인 화폐량 증가를 가정하던 모델 아래서 적극적인 화폐와 이자 정책을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기능한다.

 

9. 칼 폴라니(Karl Polanyi)

칼 폴라니 이전 시대, 식민지 혹은 미개척지에 대한 탐사 활동들은 후대에 인류학이라는 학문으로 정착된다. 고전학파의 성립 이후 마셜, 윅셀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계량적인 경제학 분석과는 다르게, 폴라니는 그의 연구에서 인류학에서 할 법한 연구 방법을 사용하여 당시 사용되던 순수하게 경제 이론의 분석 방식만을 사용하지 아니하며 “사회, 제도, 관계”의 관점에서 교환경제 시스템을 분석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거대한 전환 (The Great Transformation) 』,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들 (Trade and Markets in early Empires) 』,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들 (Dahomey and the Slave Trade)』 들은 그의 연구 양상을 잘 드러낸다.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그리고 고전학파로 종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화폐 그리고 이에 파생된 금융의 질서는 당시 경제학 연구자들로 하여금 시장과 은행이라고 하는 시스템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계량화된 연구들은 수학 모형을 사용한 체계의 정합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이는 미국 대학의 당시 경영학부 (현재는 “MBA” 과정으로 대체된)와 군사 목적의 프로젝트 발주들의 “계량화된 연구”를 가속화한다. 이런 과정 중에 화폐라고 하는 것은 거래의 매개이고 정책의 수단이며 분배의 방법으로 사회에 속하여 있는 개인을 통제하는 규범으로 인식된다.[10]

칼 폴라니는 연구저작을 통해 이런 계량 중심의 정태적인 연구들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장의 주된 구성요소인 화폐에 대한 부분에서 화폐는 무차별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동시/통시적인 사료를 통해 보여준다.

그의 저작 순서는 독특하게도 “자기조정시장”이 위험성 및 시장경제가 자생적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거대한 전환』에서 시작한다. 그의 정의에서 자기조정시장이라 함은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11] 보이지 않는 손에 통제되는 기구로, 모든 거래가능한 산출물들이 시장에서 제출되며, 희소성에 따라 해당 산출물들이 청산되는 조직이다.[12] 그는 해당 시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조직 시스템을 시장 시스템이 대체하여야 하며 노동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이 관점을 통해 그는 자기조정시장은 “허구”이거나 아니면 어떤 사회 규범[13]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보편적인 시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양태를 가진 시장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폴라니의 주장은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들』 과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들』에서 더 구체화된다. 위 두 저작에서 그는 상품화폐로 여겨지는 다양한 물건들이 사회 내에서 거래되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규범 아래서 화폐가 가치의 단위이자 단순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것이 사회 속의 개인의 삶을 상품화시키고 윤리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4세기 니제르 제국에서는 가늘고 굵게 꼬은 구리줄이 신분화폐로 사용되었던 바, 이를 발견한 공은 이븐 바투타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가느다란 구리줄은 임금을 지불하는데 쓰였다. 이 화폐로는 오직 땔감용 나무와 거친 수수만 살 수 있었고, 굵은 구리줄로는 무엇이든, 심지어 지배층이 쓰는 재화까지 살 수 있었다. 이렇게 가난한 이들에게 소비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유한계급의 높은 생활수준이 자동적으로 보호받았던 셈이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후생을 증진하려는 사려 깊은 의도를 함축하고 있는 신분적 장치도 기록에 남아있다. 16세기 근동 지역 바스라에 가보면, 더 저렴한 종류의 옷감을 구매하는데 쓰였던 ‘가난한 이들의 엘’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엘은 비싼 옷감을 판매할 때 사용하는 보통의 자보다 5분의 1이 더 길었다. 고대적 화폐는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신분과 연계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그럼으로 사회조직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연결의 끈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들』에서 폴라니에 따르면 다호메이 왕국에서 현대인이 화폐로 간주하는 것은 거래를 위한 수단이기 보다 좀 더 규범적인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14세기 니제르 제국에서 사용하는 신분 화폐인 구리줄과 16세기 바스라 지역의 엘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구리줄이 화폐의 단위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굵은 혹은 얇은 구리줄에 따라 교환 가능한 물건이 바뀌는 것을 예로 들어, 화폐에 신분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고, 엘의 경우에는 온정주의적 맥락이 포함되어 있음을 말한다.

 

10. 디지털 자산, 어떻게 봐야할까 

블록체인을 이용한 탈중앙화 생태계의 대표주자 Bitcoin 및 이후의 Blockchain 프로젝트들은 이 점에서 대단히 기형적인 산물이다.[14] 당시 나카모토 사토시를 비롯한 Blockchain Enthusiast,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여 중앙집권화 된 경제기구에서 분리된 자체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탈중앙화 된 조직을 제안 및 지지하였던 것이다. (원시적인 중상주의자들과 비슷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결과물로 등장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 된 Platform Coin들은 중앙화 된 발권력에서 독립되기 위해 컨트랙트 내에서 자동으로 발행량이 조절되는 시스템으로 제안되었다.

디지털 자산 등장 

이같은 디지털 자산 등장은 칼 폴라니가 바라보는 화폐 관점과 무관치 않다. 폴라니는 각종 사회를 예시로 들며, 고대 사회에서 우리가 화폐라고 간주하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신분을 나타내는 표상이거나 호혜적인 복지정책의 일종인 바우처였던 것을 보여준다. 화폐에는 제도나 규범 관습이 녹아있으며 단순히 거래 수단으로만 기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칼 폴라니나 혹은 경제사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처럼 과거 경제 시스템 내에서 화폐는 단순히 거래의 매개, 가치의 저장, 교환의 수단으로만 기능하지 않았다.

이는 현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어떤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화폐 수단이 확장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자산이 거래의 매개 혹은 가치의 저장이라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 기능적인 요소를 부여한다면, 특정한 목적에 따라 다른 방식의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사용이 사회에서 증명될 수 있다면, 이는 유저, 사용성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같은 형태가 화폐의 대체물이 아닌 다른 증서로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컨트랙트 경제

다만 컨트랙트 기반 시스템은 경제학설사 관점에서 잠재적 문제 발생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설사 관점에서,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대공황 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 있으나, 컨트랙트로 확정된 통화정책은 이후에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DAO 기반 컨트랙트 변경이 가능한 조직의 경우에는 이 문제의 적용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가 Asset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Token을 이용하는 컨트랙트가 합의에 따라 수정가능한 DAO 의사결정 기반 신규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Web3에 대한 관점

Web3는 시장주의자 관점에서는 대단히 독특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Web3는[16] Web에서 개인들이 생산해 낸 산출물을 시장내에서 거래 가능한 재화로 변화시키려 시도한다. Web 2.0이 단순히 정보 접근성을 강화시키고 컨텐츠를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면, Web3는 이에 더 나아가서 그 과정에서 산출된 개인정보, 컨텐츠들을 본격적으로 거래하려는 시도다. 이는 중앙화 된 Web 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개인 정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개인들에게 돌려주려는 시도로 인식된다. 대표적으로 NFT 기반 컨텐츠와 데이터 주권 섹터 등이 있다.

Web3는 현대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신한 발상이다. 기존의 시장을 침투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유통시장을 만들어 거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화폐의 회전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낮은 원가를 투입하여 실시간으로 산출물이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NFT 기반 컨텐츠”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필수재가 아니므로 상시 수요가 발생하기 쉽지 않고 게임 컨텐츠나 거래 물건에 따라 수명이 대단히 짧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 주권 섹터”에 관해서는 노동력을 넘어서 개인 데이터를 시장에서 거래가능하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17] Web3를 통해 축적된 개인 정보들은 실시간으로 축적되며 비교 가능하게 된다. 이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 예를들어 가치, 감정, 스타일, 사고 방식, 기대소득 등을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린다. 이는 인간을 부품화 시킨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재산이나 소득 등의 계급을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어 계급의 고착화를 유발할 수 있다.

DEFI(Decentralized Finance)에 대한 관점

경우에 따라, DAO 기반의 DEFI를 설립하는 안도 가능할 수 있다. 자동화된 Contract를 통해 은행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금융기관이 수행하는 대부시장의 정보 비용 감소를 간과한 행위이다. 유럽의 자유은행 혹은 민간 은행의 부도와 같은 역사적 사례를 보아도 마찬가지이며, DAO는 담보/신용 대출의 강제집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법 집행기관 등을 거쳐야 한다.

이처럼 디지털 자산은 거래 수단으로서의 화폐 기능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 관습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에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디지털 자산 생태계 설계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화폐가 아닌 폴라니가 말하는 화폐의 관점에서 개념 정의와 제도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 '화폐 역사와 디지털 자산' 원문 보러가기

 

※ 각주

[1] 김정호. 2022. 상법총칙∙상행위법. 법문사.
[2] Aristotle, Bartlett & Collins. (2011).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 Thomas, Aquinas, Saint, (1274). The “Summa theologica”, London :Burns, Oates & Washburne, ltd.,
[4] Molina, Tratado sobre los cambios
[5] Mun, Thomas, 1664. 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BiblioBazaar.
[6] Hume, D., (1752). Of the balance of trade.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Madison, 1970.
[7] John, L., (1705), Money and trade considered: with a proposal for supplying the nation with money, Newton Page, 2013.
[8] (저자 주) 물론 존 로 이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은행의 기능을 생각해보면 존 로가 설립한 뱅크 제네럴이 최고(最古)라고 주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표현이다.
[9] 관점은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와 비슷하다.
[10] 물론, 이런 마셜/윅셀의 분석 방법은 이후 통화주의/제도주의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통제”, “자율적인 분배” 등의 관점으로 나뉘므로 통제라는 표현은 설명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11] 비록 국부론에서는 1회 언급되었으나,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단어이다.
[12] 그런데 이런 자기조정 시장에는 한 꾸러미의 전제가 더 따라붙는데, 그것은 국가와 국가 정책에 관한 것이다. 어떤 시장이든 그것이 형성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소득이든 시장에서의 판매 이외의 방법으로 형성되는 것을 허락해서도 안 된다.시장기구라고도 불린다.
[13] 폴라니는 정치라고 말한다.
[14] Bitcoin이 등장한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로, 당시 금융기관들이 충분한 신실함 없이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금융상품을 발행 및 파생상품을 운용하였다. 이후 대마불사라는 이름 하에 “화폐 — 금융” 구조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구제금융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다수의 개인들은 도외시되었다.
[15]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더욱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16] Web 2.0의 다음 단계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겠으나
[17] 윤리 혹은 규범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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